
솔직히 말해서, 오늘 아침 출근길 버스 안에서 해커뉴스(Hacker News)를 보다가 피식 웃음이 나왔습니다. "웨어러블 기술용 소프트웨어 개발하는 사람 있나요?"라는 질문이 하나 올라왔더군요. 반지고, 밴드고, 선글라스고 인터페이스가 쏟아지는데 이걸로 뭘 해보려는 사람이 있냐는 순진한 물음이었습니다. 제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S-Health 기획할 때, 그리고 SKT에서 NUGU라는 AI 스피커 붙잡고 씨름할 때 수없이 받았던 질문과 똑같았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보자마자 옛날 생각이 났습니다. 당시 경영진은 항상 이렇게 말했죠. "야, 애플워치 나왔으니까 우리도 워치 앱 기깔나게 하나 만들어봐. 킬러 앱이 필요해." 그러면 개발자들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습니다. "그래서 사용자가 손목 들어 올려서 뭘 해야 하는데요? 센서 데이터는 어디까지 열려 있습니까?" 그 사이에서 저는 통역사가 되어야 했습니다. "상무님, 워치 SDK가 아직 심박수 로우 데이터(Raw Data)를 실시간으로 안 줍니다"라고 말리면, "안 되는 게 어딨어, 되게 해!"라는 호통이 돌아오곤 했죠. 이게 10년 전 일인데, 지금 상황이 얼마나 달라졌을까요?
안타깝게도 상황은 크게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해당 게시글의 댓글을 보면 현실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누군가 Meta Glasses와 Even Realities의 SDK를 지켜보고 있다고 했지만, "아직 많은 접근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짤막한 답변을 달았습니다. 이게 바로 웨어러블 개발의 가장 큰 장벽, 바로 '폐쇄성'입니다. 하드웨어 제조사는 자신들의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핵심 센서 데이터나 인터페이스 접근 권한을 꽁꽁 싸매고 있습니다. 애플이 링(Ring)을 낸다고 해도, 스타트업 개발자가 그 링의 자이로 센서 데이터를 마음대로 가져다가 게임 컨트롤러로 쓸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반면, 눈여겨봐야 할 댓글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Fitabase'라는 회사의 창업자가 남긴 글입니다. 이들은 무려 14년 동안 소비자용 웨어러블을 건강 연구용으로 재활용하는 비즈니스를 해왔다고 합니다. Fitbit과 Garmin의 고해상도 데이터를 추출해서 연구기관에 파는 모델이죠. "수익을 내며 성장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무릎을 쳤습니다. 화려한 인터페이스나 폼팩터의 혁신이 아니라, 이미 깔려 있는 기기에서 나오는 '데이터의 파이프라인'을 장악한 자가 살아남은 것입니다.
이게 바로 제가 주니어 기획자나 개발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입니다. "새로운 폼팩터가 나왔으니 거기에 맞는 UI를 그려보자"는 접근은 너무나 1차원적이고 위험합니다. 그런 건 애플이나 삼성 내부의 UX 팀이 하게 놔두세요.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 기기가 뱉어내는 데이터가 어디로 흐르고, 어디서 막히는지 파악하는 것입니다. 예쁜 앱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 데이터로 어떤 '가치'를 뽑아낼지 고민해야 합니다. Fitabase가 생존한 이유는 웨어러블 기기를 만든 게 아니라, 웨어러블이 만든 데이터를 '해석'할 수 있는 도구를 팔았기 때문입니다.
저도 한때는 AI 스피커가 모든 집을 지배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음성 UX 설계하느라 밤을 새웠죠. 하지만 지금 보세요. 사람들은 여전히 스피커보다 화면을 편해합니다. 웨어러블도 마찬가지입니다. 스마트 링이 대세가 된다고 해서 모든 앱을 링으로 제어하게 되진 않을 겁니다. 대신 링이 수집한 수면 데이터, 스트레스 지수 같은 바이오 데이터가 헬스케어 플랫폼의 핵심 자산이 되겠죠.
그러니 지금 웨어러블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이 있다면, SDK 문서의 'UI 컴포넌트' 섹션을 보지 말고 'Data Access' 섹션을 먼저 보십시오. API가 얼마나 열려 있는지, 실시간 스트리밍은 되는지, 배터리 소모 이슈 때문에 백그라운드 작업이 죽지는 않는지부터 확인해야 합니다. 화려한 청사진보다 중요한 건 비즈니스 로직이 돌아갈 수 있는 '현실적인 구멍'을 찾는 것입니다.

기술은 계속 변합니다. 밴드에서 워치로, 워치에서 링으로, 이제는 안경으로 갑니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습니다. 하드웨어는 데이터를 모으는 그릇일 뿐이고, 돈은 그 데이터를 요리하는 곳에서 나옵니다. 저도 요즘 AI 에이전트니 뭐니 해서 정신없지만, 결국 이 AI가 어떤 데이터를 먹고 자라느냐가 관건이라는 걸 매일 느낍니다. 웨어러블 시장, 겉멋만 보고 뛰어들면 3년 뒤 당신의 서비스는 디지털 시체보관소인 '서비스 종료 목록'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겁니다. 폼팩터의 환상에 속지 마세요. 데이터의 흐름을 보십시오. 그게 이 정글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