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해봅시다. 요즘 링크드인이나 블라인드를 보면 기가 찹니다. "네카라쿠배 입사했습니다", "연봉 50% 점프해서 이직합니다" 같은 글들이 쏟아지죠. 축하할 일입니다. 하지만 20년 가까이 이 바닥에서 폭포수 모델부터 애자일, 그리고 지금의 AI 대전환기까지 굴러먹은 제 눈에는 그 환호 뒤에 도사린 서늘한 그림자가 보입니다. 마치 고등학교 밴드부의 마지막 공연을 보는 학부모의 심정이랄까요. 조명 아래서 가장 빛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그 아이 인생의 정점(Peak)일지도 모른다는 섬뜩한 깨달음 말입니다.
제가 오늘 하려는 이야기는 닥터 민들(Dr. Mindle)이 언급한 'ISEE 궤적'이라는 개념을 빌려, 우리 개발자와 PM들이 처한 적나라한 현실을 해부하는 것입니다. 많은 주니어들이 착각하는 게 하나 있습니다. 'Powerful(강력함)'과 'Strong(강함)'을 혼동한다는 겁니다. 구글이나 삼성전자 같은 타이틀, 높은 연봉, '시니어'라는 직함은 당신을 'Powerful'하게 만들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게 당신이 내적으로 'Strong'하다는 증거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 둘은 완전히 별개의 축입니다. 제가 삼성 무선사업부에 있을 때 뼈저리게 느꼈던 겁니다. 거대 조직의 간판을 떼고 나니, 야생에서 살아남을 제 진짜 '근력'은 형편없더군요. 취약해 보이는 스타트업의 개발자가 레거시 코드를 씹어먹으며 문제를 해결하는 모습이 훨씬 더 강해 보였습니다. 닥터 민들은 이를 두고 '자신의 현실을 정확히 아는 자가 강하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ISEE라는 4가지 축을 대입해 봅시다. 지적(Intellectual), 사회적(Social), 경제적(Economic), 정서적(Emotional) 궤적입니다. 이 네 가지 요소의 균형이 깨질 때 우리 커리어는 박살 납니다. 예컨대, 경제적 지위(연봉)는 높은데 정서적 지위(멘탈)가 바닥인 경우를 봅시다. AWS나 쿠팡 같은 곳에서 고연봉을 받지만, 매일 밤 트래픽 공포에 시달리며 번아웃이 온 개발자가 바로 이 케이스입니다.
반대로 지적 능력은 뛰어난데 경제적 보상이 따라주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세상은 내 코드를 몰라줘'라며 냉소만 쏟아내는 방구석 천재가 됩니다. 이 불균형(Gap)이 커질수록 당신의 웰빙은 무너집니다. 제가 수많은 프로젝트를 엎으며 깨달은 건, 개발자든 PM이든 롱런하는 사람은 이 4가지 궤적을 끊임없이 조율하며 자신의 '정점'을 뒤로 미루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특히 위험한 건 '현실 왜곡'입니다. 자기 실력보다 과한 대우를 받거나(Over-Reality), 혹은 반대로 지나친 불안감(Under-Reality)에 시달리는 경우죠. 전자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이 코드는 완벽해, QA가 문제야"라고 우기다가 팀을 망치고, 후자는 충분히 잘하고 있음에도 끊임없이 자신을 갉아먹다가 우울증에 빠집니다. AI가 코드를 짜주는 시대에, 전자의 거만함은 자살행위이고 후자의 불안함은 불필요한 리소스 낭비입니다.
팀워크, 즉 대인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PM인 저와 개발자인 당신의 관계가 안정적이려면, 서로가 서로를 우러러보는 지점이 적어도 하나씩은 있어야 합니다. 이를 '교차하는 곡선'이라고 합시다. 만약 제가 "비즈니스 로직도 모르면서 코딩만 하네"라고 무시하거나, 당신이 저를 "기술도 모르는 게 일정만 쪼네"라고 경멸한다면, 그 관계는 이미 끝난 겁니다. 한쪽이 모든 면에서 우월한 관계는 지속 불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답은 간단하지만 실천은 어렵습니다. '정점을 유예하십시오.' 20대, 30대에 커리어 하이를 찍으려 하지 마세요. 초기에 겪는 좌절이나 실패는 오히려 축복입니다. 거품 낀 연봉과 타이틀에 취해 자신의 내면이 비어가고 있음을 망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당장 Cursor나 Copilot을 켜서 생산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건 내가 지금 현실의 어디쯤 서 있는지를 냉정하게 파악하는 메타인지입니다. 지적으로 성장하고 있는지, 정서적으로 안정되어 있는지, 동료들에게 존중받고 있는지(사회적), 그리고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고 있는지(경제적)를 끊임없이 점검하세요.
화려한 청사진만 그리는 경영진과 신기술만 좇는 주니어 사이에서, 제가 매일 아침 출근하며 되뇌는 것도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전성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전성기도 오늘이 아니길 바랍니다. 오늘이 당신의 정점이라면, 내일은 추락뿐일 테니까요. 버티십시오. 그리고 내실을 다지십시오. 그게 이 정글 같은 IT 바닥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