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용자 데이터를 몰래 긁어모으려다 식은땀 흘린 날, 그리고 뼈아픈 교훈

내가 사용자 데이터를 몰래 긁어모으려다 식은땀 흘린 날, 그리고 뼈아픈 교훈

김성철·2026년 1월 9일·3

사용자 데이터를 무조건 수집하는 것이 정답일까요? 삼성전자의 ACR 데이터 수집 논란을 통해 기획자가 저지르기 쉬운 '프라이버시 부채'와 신뢰의 가치를 되짚어 봅니다.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텍사스 법원이 삼성전자의 TV 시청 데이터 추적을 막았다가 하루 만에 번복했다는 뉴스를 보고, 저는 웃을 수가 없었습니다. 남의 일이 아니었거든요. 저도 한때는 "데이터가 곧 자산"이라는 구호 아래, 사용자의 동의를 어떻게 하면 가장 매끄럽게(라고 쓰고 교묘하게라고 읽습니다) 받아낼지 고민하던 기획자였습니다. 오늘은 기술적인 아키텍처나 비즈니스 전략이 아닌, 우리가 무심코 저지르는 '프라이버시 부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이번 사건의 핵심은 ACR(Automated Content Recognition) 기술입니다. 0.5초마다 TV 화면을 스크린샷으로 찍어 사용자가 무엇을 보는지 분석하고, 이를 타겟 광고에 활용한다는 것이죠. 텍사스 주 검찰총장은 삼성이 이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고, 중국 공산당이 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는(한국 기업인 삼성 입장에서는 억울할 법한) 주장을 펼치며 소송을 걸었습니다. 법원은 처음엔 삼성의 데이터 수집을 중단시켰다가, 하루 만에 그 명령을 취소했습니다. 삼성이 이겼을까요? 아니요, 저는 오히려 삼성이 '신뢰'라는 가장 비싼 비용을 치르고 있다고 봅니다.

저 역시 과거 S-Health 서비스를 기획할 때 비슷한 유혹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사용자의 걸음 수, 심박수, 수면 패턴... 이 모든 로그(Log)가 쌓이면 언젠가 돈이 될 거라는 막연한 믿음이 있었죠. 개발팀에게는 "일단 다 남겨주세요, 나중에 쓸 데가 있을 겁니다"라고 요구했고, UI 디자이너에게는 약관 동의 버튼을 눈에 잘 띄게, 거부(Opt-out) 버튼은 찾기 어렵게 배치해 달라고 졸랐습니다. 소위 말하는 '다크 패턴(Dark Patterns)'을 설계한 주범이 바로 저였던 셈입니다.

이번 텍사스 법원 기록을 보면, 개인정보 관련 고지를 확인하기 위해 리모컨을 '200번 이상' 클릭해야 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솔직히 찔렸습니다. 우리네 서비스들도 별반 다르지 않으니까요. 사용자가 "아, 귀찮아" 하고 넘기는 그 찰나의 순간을 노려 데이터를 수집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UX 최적화라고 포장해왔습니다.

하지만 제가 뼈저리게 느낀 건, 그렇게 억지로 모은 데이터는 결국 독이 되어 돌아온다는 사실입니다. 한번은 수집 목적이 불분명한 데이터를 잔뜩 쌓아뒀다가, GDPR(유럽 개인정보보호법) 이슈가 터지면서 그 거대한 데이터 레이크(Data Lake)를 전수 조사하느라 팀 전체가 몇 달을 야근으로 지새운 적이 있습니다. 클라우드 비용은 비용대로 나가고, 정작 비즈니스 인사이트는 뽑아내지 못했죠. 게다가 보안 감사 때마다 "이 데이터는 왜 수집했습니까?"라는 질문에 식은땀을 흘리며 변명을 늘어놓아야 했습니다.

주니어 개발자나 PM 후배님들, 요즘 AI다 뭐다 해서 데이터 수집에 열을 올리는 거 압니다. Cursor나 Claude 같은 도구로 코딩 효율을 높이는 건 좋지만, 기획 단계에서 '프라이버시'를 고려하지 않으면 나중에 10배, 100배의 리소스가 듭니다. 단순히 법을 피하기 위한 약관 동의가 아니라, "이 데이터를 수집하는 이유를 우리 어머니에게도 떳떳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를 자문해 봐야 합니다.

법원의 명령 취소로 삼성은 당장의 숨통은 트였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사용자는 이제 내 TV가 나를 감시하고 있다는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을 겁니다. 기술은 사용자의 삶을 편하게 만들기 위해 존재해야지, 사용자를 몰래 분석해 상품화하기 위해 존재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회의에서 누군가 "일단 수집하고 보죠"라고 말한다면, 꼰대 같은 선배의 잔소리라고 생각하고 한 번쯤 제동을 걸어주세요. 그게 결국 여러분의 퇴근 시간을 지키고, 서비스의 수명을 늘리는 길입니다. 혁신은 기술력에서 나오지만, 서비스의 생존은 사용자의 신뢰에서 나옵니다.

김성철
김성철테크니컬 PM

혁신보다는 '생존'이 목표인 15년 차 IT 노동자입니다. 화려한 기술 트렌드 뒤에 숨겨진 정치와 비용, 그리고 레거시의 무게를 이야기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코드를 읽고, 몰래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 시대의 불안한 팀장들을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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