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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자 없이 서비스 만들려다 망해본 PM이 깨달은, AI 시대에 진짜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하는 법"

"개발자 없이 서비스 만들려다 망해본 PM이 깨달은, AI 시대에 진짜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하는 법"

김성철·2026년 1월 5일·4

야후 파이프스의 실패와 리툴의 통찰을 통해 깨달은, 노코드와 AI 시대에 PM이 갖춰야 할 진짜 데이터 파이프라인 구축 전략과 기술적 부채에 대한 고찰.

솔직히 말해서, 요즘 '노코드(No-code)'나 '로우코드(Low-code)' 툴이 세상을 바꿀 거라고 떠들썩할 때마다 저는 쓴웃음을 짓습니다. 2007년쯤이었나요. 제가 삼성전자 무선사업부에서 피쳐폰에 들어갈 헬스 케어 기획서를 쓰고 있을 때, 실리콘밸리에서 '야후 파이프스(Yahoo Pipes)'라는 물건이 등장했습니다. 그건 마치 신의 계시 같았습니다. 개발자에게 "이 데이터 좀 저기로 옮겨주세요"라고 사정하지 않아도, 제가 직접 드래그 앤 드롭만으로 RSS 피드를 긁어와서 지도에 뿌릴 수 있었으니까요. 당시 우리는 그걸 '매시업(Mashup)'이라고 불렀고, 곧 개발자가 필요 없는 세상이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결과는 어땠을까요? 야후 파이프스는 2015년에 쓸쓸히 문을 닫았고, 저는 여전히 개발팀 팀장님 눈치를 보며 API 연동 스펙을 협의하고 있습니다.

최근 리툴(Retool)에서 발행한 'Pipe Dreams'라는 아티클을 읽으며 저는 잊고 있던 그 시절의 트라우마와 향수를 동시에 느꼈습니다. 야후 파이프스는 시대를 너무 앞서간 비운의 천재였습니다.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마치 배관 연결하듯 잇는다는 발상은 지금의 재피어(Zapier)나 IFTTT, 심지어 최근 유행하는 AI 에이전트의 워크플로우와 소름 끼치게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저는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화면에서 선을 긋는 건 쉽지만, 그 뒤에서 돌아가는 비즈니스 로직은 결코 시각화된 블록 몇 개로 감당할 수 없다는 것을 말이죠. 복잡해진 파이프는 결국 '스파게티 코드'의 시각적 버전일 뿐이었고, API 스펙이 하나만 바뀌어도 전체가 와르르 무너지는 꼴을 보며 저는 밤새 복구 작업을 해야 했습니다.

[이미지: 야후 파이프스의 복잡하게 얽힌 와이어링 화면 예시]

그렇다면 2024년의 우리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여전히 많은 기획자와 주니어 PM들이 "개발 없이 툴로 해결하겠다"며 덤벼듭니다. 하지만 저는 후배들에게 단호하게 말합니다. "툴을 믿지 말고 데이터의 흐름을 장악하라"고요. 야후 파이프스가 실패한 결정적인 이유는 유지보수의 지옥 때문이었습니다. 데모를 보여주기엔 화려했지만, 실제 상용 서비스의 트래픽과 예외 처리를 감당하기엔 턱없이 부족했죠. 지금 우리가 쓰는 노코드 툴이나 AI 자동화 도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화려한 UI 뒤에는 언제든 터질 수 있는 폭탄이 숨겨져 있습니다. 저도 한때는 개발팀을 거치지 않고 직접 MVP를 만들어 임원 보고를 들어갔다가, 시연 중에 서버가 뻗어 식은땀을 흘렸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합니다. 그때 깨달았습니다. 편리함은 언제나 부채(Debt)를 동반한다는 사실을요.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으로 이런 도구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다만 접근 방식이 20대 때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전에는 개발자를 대체하려고 툴을 썼다면, 지금은 개발자와 '같은 언어'로 대화하기 위해 씁니다. 최근 저는 챗GPT나 클로드(Claude) 같은 LLM을 활용해 파이썬으로 간단한 크롤러를 짜거나 데이터 전처리 스크립트를 만듭니다. 야후 파이프스가 주던 '드래그 앤 드롭'의 환상 대신, AI가 짜준 코드를 검증하고 실행하는 방식을 택한 겁니다. 이는 야후 파이프스가 꾸었던 꿈, 즉 '프로그래밍의 민주화'가 AI라는 새로운 엔진을 달고 부활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야후 파이프스의 교훈은 명확합니다. 기술은 변해도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데이터를 어디서 가져와서(Source), 어떻게 가공하고(Process), 어디로 보낼 것인가(Destination). 이 기본적인 흐름을 이해하지 못한 채 툴의 기능에만 의존하면 결국 2015년의 야후 파이프스처럼 폐기 처분될 운명입니다. 저는 SK텔레콤에서 AI 스피커 서비스를 기획할 때도, 지금 핀테크에서 복잡한 정산 시스템을 다룰 때도 이 원칙을 고수합니다. 화려한 겉모습보다는 데이터가 흐르는 배관, 즉 파이프라인의 견고함을 먼저 봅니다.

우리는 지금 '제2의 야후 파이프스 시대'를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랭체인(LangChain)이나 오토GPT 같은 도구들이 쏟아져 나오며 다시 한번 "누구나 개발자가 될 수 있다"고 유혹합니다. 하지만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그 달콤한 말에 속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대신 그 도구들을 이용해 자신의 업무 효율을 극대화하고, 남는 시간에 진짜 비즈니스 가치가 무엇인지 고민하십시오. AI가 코드를 짜주는 세상이라지만, 그 코드가 왜 필요한지 정의하는 건 결국 사람의 몫입니다. 야후 파이프스는 사라졌지만, 데이터를 자유자재로 다루고 싶다는 우리의 욕망은 여전하고, 그 욕망을 실현하는 방법은 이제 훨씬 더 똑똑해져야 합니다. 20년 차 고인물이 살아남기 위해 매일 아침 AI와 씨름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도구에 잡아먹히지 않고, 도구를 타고 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입니다.

김성철
김성철테크니컬 PM

혁신보다는 '생존'이 목표인 15년 차 IT 노동자입니다. 화려한 기술 트렌드 뒤에 숨겨진 정치와 비용, 그리고 레거시의 무게를 이야기합니다. '꼰대'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 밤 코드를 읽고, 몰래 AI에게 질문을 던지는 이 시대의 불안한 팀장들을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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