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하겠습니다.
10년 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시절에는 '위치 기반 서비스(LBS)' 하나 제대로 기획하려면 머리가 다 빠지는 줄 알았습니다. GPS 오차 범위를 줄이겠다고 와이파이 AP 데이터를 긁어모으고, 비콘을 설치하고, 현장 드라이브 테스트를 돌리며 엑셀 파일 수천 개와 싸워야 했으니까요.
그때는 그게 기술의 정점인 줄 알았습니다. POI(Point of Interest) 데이터베이스 구축에만 수십억을 쏟아붓는 게 당연한 '혁신'이라고 믿었죠.
그런데 오늘, 우연히 발견한 서비스 하나 때문에 점심 먹은 게 체할 뻔했습니다.
'GeoSpy'라는 녀석입니다.
이름부터 심상치 않은 이 AI 모델은, 차량 사진 한 장만 던져주면 그 차가 어디에 있는지 30초 만에 찾아낸다고 호언장담하더군요. 처음엔 코웃음을 쳤습니다.
"야, 사진 한 장에 담긴 픽셀 정보가 얼마나 된다고. 메타데이터(Exif) 다 지우면 깡통이지."
제가 틀렸습니다. 그것도 아주 처참하게요.

제가 테스트 삼아 올린 사진에는 번호판도 제대로 안 보였고, GPS 태그도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은 배경에 스치듯 찍힌 가로등 모양, 보도블럭의 패턴, 뒤편 건물의 식생을 분석하더군요. 그리고 정확히 런던의 어느 골목길 좌표를 찍어줬습니다.
등골이 서늘했습니다.
우리가 수많은 회의를 거쳐 로직을 짜고, 개발팀과 API 명세서를 두고 싸우며 만들던 그 복잡한 위치 추적 시스템이, 이제는 그냥 이미지 한 장 해석하는 AI의 추론 능력 앞에 무릎을 꿇은 기분이었습니다.
이건 단순히 '신기한 기술'의 문제가 아닙니다.
OSINT(공개 출처 정보)의 영역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보여주는 살벌한 증거입니다. 과거에는 보안 팀이나 정보기관에서 특수 장비로 하던 일을, 이제는 누구나 웹 브라우저 하나 켜놓고 할 수 있게 된 겁니다.
경영진들은 여전히 "우리만의 독자적인 위치 데이터를 확보하라"며 비현실적인 청사진을 그립니다. 반면 갓 입사한 주니어 개발자들은 "상무님, 이거 그냥 GeoSpy API 붙이면 끝 아닌가요?"라고 묻겠죠.
그 사이에서 통역사 노릇을 해야 하는 제 입장은 참 난처합니다.
기존의 레거시 시스템을 옹호하자니 꼰대 같고, 무턱대고 외부 AI 솔루션을 도입하자니 데이터 보안과 프라이버시 이슈가 발목을 잡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세상이 변하는 속도가 제 예상보다 훨씬 빠르다는 겁니다. 내가 20대 때 밤새워 공부했던 기술적 장벽들이, AI라는 불도저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지고 있습니다.
두렵냐고요? 네, 두렵습니다.
내 경험과 노하우가 '구시대의 유물' 취급을 받을까 봐 무섭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살아남으려면 이 불편한 도구를 내 손에 익혀야죠. 오늘 오후 회의 때는 이 GeoSpy 사례를 들고 들어가 볼 생각입니다. 개발팀장이 보안 이슈로 거품을 물겠지만, 적어도 우리가 지금 얼마나 안일하게 '기술적 해자'를 믿고 있는지 깨우쳐주기엔 충분할 테니까요.
기술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습니다. 30초 만에 위치를 찾아내는 이 섬뜩한 효율성 앞에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더 보여줄 수 있을까요.
오늘 퇴근길엔 생각이 좀 많아질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