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gnal 쓰면 안전하다고요? 280억 달러짜리 해킹 앞에서 암호화는 무용지물입니다.

Signal 쓰면 안전하다고요? 280억 달러짜리 해킹 앞에서 암호화는 무용지물입니다.

이도현·2026년 1월 8일·3

미국 ICE의 287억 달러 예산과 감시 기술 시장의 성장이 암호화 기술에 던지는 경고. 기술적 방어막이 거대 자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분석합니다.

솔직히 말해봅시다. 여러분이 밤새워 개발한 보안 기능, 그거 얼마나 버틸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최근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의 2025년 예산안이 공개되었습니다. 287억 달러. 한화로 약 40조 원에 육박합니다. 전년 대비 3배 가까이 뛴 수치인데, 이 막대한 자금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보면 등골이 서늘해집니다. 그들은 지금 '감시 장비 쇼핑'을 하고 있습니다. 백화점이 아니라, 감시 기술 시장(Surveillance Tech Market)에서 말이죠. CEO로서 이 숫자를 보면 군침이 돕니다. 불황 없는 확실한 BM(비즈니스 모델)이니까요. 하지만 개발자 출신으로서 저는 지금 심각한 공포를 느낍니다. 우리가 믿고 있던 '기술적 방어막'이 자본 앞에서 얼마나 무력한지 뼈저리게 보여주는 사례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개발자, 특히 보안이나 메신저 앱을 만드는 분들이 흔히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우리 앱은 E2E(End-to-End) 암호화를 적용했으니 안전해요." 혹은 "Signal이나 Telegram을 쓰면 정부도 못 들여다봐요." 죄송하지만, 이건 기술적 낭만주의에 불과합니다. ICE가 이번에 계약을 갱신한 업체들의 면면을 보십시오. 이스라엘의 Cellebrite, 캐나다의 Magnet Forensics, 그리고 스파이웨어 제조사 Paragon입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단순합니다. 암호화를 '푸는' 게 아니라, 단말기 자체를 '장악'하는 겁니다. Cellebrite는 물리적으로 확보한 폰의 잠금을 해제하고, 파일 시스템 전체를 덤프(Dump) 뜹니다. Paragon의 'Graphite' 스파이웨어는 더 악랄합니다. 클라우드 백업 데이터를 낚아채거나 OS 레벨에서 키보드 입력을 가로채면, 여러분이 아무리 강력한 암호화 프로토콜을 구현했어도 무용지물이 됩니다. 상대방은 40조 원을 쥔 '고래'이고, 우리는 고작 몇 억짜리 예산으로 방어하는 '새우'입니다. 이 싸움의 승패는 이미 자본의 규모에서 결정난 셈입니다.

SI 프로젝트 리더 시절, 공공기관 차세대 시스템을 구축하며 뼈저리게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데이터는 흩어져 있을 때만 안전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ICE는 이 원칙마저 돈으로 깨부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직접 감청하는 수고를 덜고, 그냥 데이터를 사들입니다. 운전면허증 사진, 공과금 납부 내역, 위치 데이터 브로커가 수집한 이동 경로... 이 모든 데이터를 통합(Integration)하여 성인 4명 중 3명을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이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마케팅 효율을 위해 붙여놓은 SDK, 리텐션 분석을 위해 수집한 로그 데이터가 결국은 거대한 감시 기구의 '쇼핑 리스트'에 올라가 있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넘긴 약관 동의 하나, 사소한 API 연동 하나가 누군가의 삶을 옥죄는 족쇄가 됩니다.

개발자 후배님들, 그리고 스타트업 창업자분들. 이제 "나는 기술만 잘 만들면 돼"라는 안일한 생각은 버리셔야 합니다.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작성한 코드가 B2G(Business to Government) 시장으로 흘러들어가는 순간, 그것은 통제와 감시의 도구가 됩니다. ICE의 예산 폭증은 단순히 미국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전 세계 정부들이 '테크 기반 감시'에 눈을 떴고, 이 시장은 앞으로 폭발적으로 성장할 겁니다.

우리는 선택해야 합니다. 이 거대한 흐름에 편승하여 감시 기술을 팔아 매출을 올리는 '죽음의 상인'이 될 것인가, 아니면 최소한의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지키며 사용자 데이터를 필사적으로 방어하는 '방패'가 될 것인가. 전자라면 돈은 벌겠지만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고, 후자라면 매일매일이 폐업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어설픈 낭만으로 "기술이 세상을 구한다"고 떠들기엔 현실이 너무 차갑다는 겁니다. 40조 원짜리 해킹 툴 앞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비즈니스 로직과 보안 아키텍처, 지금 당신에게는 있습니까? 없다면 당장 모니터 끄고 현실부터 직시하십시오. 코드는 거짓말을 안 하지만, 자본은 언제나 진실을 덮을 수 있습니다.

이도현
이도현B2B SaaS 창업자 & CEO

"매출이 발생하지 않는 혁신은 그저 값비싼 취미생활일 뿐입니다." LG CNS의 엔터프라이즈 감각과 토스(Toss)의 야생성을 거쳐, 현재는 B2B SaaS 정글에서 생존을 증명하고 있는 실전형 창업가입니다. '돈이 되는 프로덕트'를 만드는 처절한 노하우를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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