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대중으로 기어 그리다 3D 프린터 필라멘트 한 통 다 버리고 정착한 설계 도구

눈대중으로 기어 그리다 3D 프린터 필라멘트 한 통 다 버리고 정착한 설계 도구

김다은·2026년 1월 7일·3

눈대중으로 기어를 그리다 실패를 맛본 디자이너가 공학적 설계 도구 Neo Gear를 통해 깨달은 논리적 디자인의 중요성과 도구 사용법에 대한 회고입니다.

디자인을 전공하고 처음 실무에 투입되었을 때 가장 힘들었던 건 툴을 다루는 미숙함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클라이언트와 기획자의 추상적인 언어를 해석하는 일이었습니다. "뭔가 좀 더 엣지있게", "요즘 느낌으로 힙하게". 이런 피드백을 받을 때마다 저는 모니터 뒤에서 조용히 절망했습니다. 도대체 '요즘 느낌'의 정의가 뭐란 말인가요. 그때부터였습니다. 제가 디자인을 감성의 영역이 아닌, 철저한 논리와 숫자의 영역으로 끌어내리기 위해 발버둥 치기 시작한 것은.

모든 디자인에는 'Why'가 있어야 한다는 강박은 UI 화면을 넘어 취미 생활인 3D 프린팅으로까지 번졌습니다. 최근 개인 프로젝트로 작은 기계 장치를 만들 일이 있었습니다. 당연히 저는 기어를 그려야 했죠. 처음엔 평소 하던 대로 일러스트레이터와 3D 툴을 켜고 '보기에 예쁜' 비율로 톱니바퀴를 그렸습니다. 화면상으로는 완벽해 보였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꼬박 10시간을 들여 출력한 기어들은 서로 맞물리지조차 않았습니다. 억지로 끼워 맞추니 '끼기긱' 하는 소름 돋는 소리와 함께 이빨이 부러져 나갔습니다. 화면 속의 1px 오차는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물리 세계에서의 0.1mm 오차는 기능의 사망을 의미한다는 걸 뼈저리게 느낀 순간이었습니다. 소중한 주말과 필라멘트 한 통을 날리고 나서야 저는 '뇌피셜 디자인'을 멈추고 공학적 도구를 찾아 나섰습니다. 그렇게 만난 것이 바로 Neo Gear입니다.

이 도구는 화려한 그래픽 인터페이스나 감성적인 필터 따위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대신 지독할 정도로 솔직한 숫자들만 나열되어 있습니다. 처음 웹페이지를 열었을 때, 저는 묘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이곳엔 "느낌 있게 그려주세요"라는 모호함이 끼어들 틈이 없었거든요.

Neo Gear는 기어를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기어를 '연산하는' 도구입니다. 제가 가장 먼저 마주한 변수는 '모듈(Module)'이었습니다. 피치 직경을 톱니 수로 나눈 값. 이 값이 맞지 않으면 아무리 예쁘게 모델링해도 두 기어는 절대 맞물리지 않습니다. 디자이너들이 그리드를 맞추고 타이포그래피의 위계를 세우듯, 기어 설계에도 절대적인 규칙이 존재했던 겁니다.

특히 저를 감탄하게 한 부분은 '백래시(Backlash)'와 '클리어런스(Clearance)' 설정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실패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이론상 완벽한 치수라 해도, 3D 프린터가 녹여내는 플라스틱의 수축과 팽창을 고려하지 않으면 실제로는 꽉 끼어서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 도구는 0.05mm 단위의 미세한 공차를 수치로 입력하게 함으로써, 물리적인 현실 세계의 오차를 논리적으로 보정해 줍니다. 마치 개발자에게 디자인 가이드를 넘길 때, 마진과 패딩 값을 픽셀 단위로 명시하여 디바이스 파편화에 대응하는 과정과 너무나 닮아 있었습니다.

또한 '압력각(Pressure Angle)' 설정을 통해 기어가 맞물릴 때 힘이 전달되는 각도까지 제어할 수 있습니다. 저는 보통 20도로 설정하지만, 더 부드러운 회전이 필요할 땐 14.5도로 낮추기도 합니다. 이 외에도 D-Shaft, Hexagonal 등 다양한 샤프트 홀 타입을 클릭 한 번으로 변경할 수 있어, 모델링 툴에서 구멍을 뚫느라 불린(Boolean) 연산을 반복하던 '삽질'의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었습니다.

이 모든 과정이 무거운 프로그램 설치 없이, 로컬 브라우저에서 즉시 실행된다는 점도 매력적입니다. 내보내기는 STL과 3MF 형식을 지원하여 슬라이서 프로그램으로 바로 가져갈 수 있습니다.

누군가는 "그냥 무료 소스 다운받아 쓰면 되지 않냐"고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도구를 통해 다시 한번 확인했습니다. 훌륭한 결과물은 감각적인 드로잉이 아니라, 치밀한 설계와 근거 있는 수치에서 나온다는 사실을요.

UI 디자인을 하다 보면 가끔 "그냥 여기 뒀을 때 예쁘니까"라는 유혹에 빠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 버튼이 거기에 있어야 하는 논리적인 이유를 설명할 수 없다면, 그것은 디자인이 아니라 치장에 불과합니다. 3D 프린팅 기어가 서로 맞물려 돌아가기 위해 정확한 모듈 값과 압력각이 필요하듯, 우리의 인터페이스도 사용자의 경험과 정확하게 맞물려 돌아가기 위해선 명확한 의도와 수치가 필요합니다.

혹시 지금도 "대충 눈대중으로" 화면을 그리고 계신가요? 혹은 개발자에게 "적당히 간격 좀 띄워주세요"라고 말하고 계신가요? 1px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 엔지니어링의 세계를 잠시 들여다보세요. 그 팍팍해 보이는 숫자들 속에, 낭비를 줄이고 본질에 집중하게 만드는 해답이 숨어있을지도 모릅니다. 저처럼 주말을 통째로 날리고 후회하기 전에 말이죠.

김다은
김다은주니어 UI/UX 디자이너

'예쁜데요?'보다 '지표가 올랐네요'를 듣고 싶은 3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 감성의 영역을 논리의 언어로 통역하며, 개발자와 기획자 사이에서 살아남는 실전 생존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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