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창업 초기, 저는 큰 실수를 하나 저질렀습니다. 우리 비즈니스에 딱 맞는 내부 운영 도구, 즉 어드민(Admin) 페이지와 간이 CRM을 직접 개발하기로 결정했던 일입니다. 당시 개발 팀원들은 "간단한 CRUD 작업일 뿐이니 금방 만든다"라고 자신했고, 저 역시 기존 상용 솔루션들은 비싸거나 우리 프로세스에 100% 맞지 않는다는 핑계로 그 결정에 동의했습니다. 하지만 그 '간단한' 프로젝트는 메인 제품 개발 리소스를 야금야금 잡아먹는 괴물이 되었습니다. 결제 모듈을 붙이고, 송장 기능을 추가하고, 고객 데이터를 엑셀로 내보내는 기능을 요청받을 때마다, 우리는 정작 고객에게 팔아야 할 핵심 서비스인 SaaS 제품의 로드맵을 뒤로 미뤄야 했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비즈니스의 핵심 경쟁력이 아닌 영역에 개발 리소스를 투입하는 것은, 스타트업에게 있어 자살행위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최근 깃허브(GitHub)에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Odoo' 리포지토리를 보며 그때의 기억이 떠올랐습니다. Odoo는 단순한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비즈니스 성장에 필요한 거의 모든 기능을 모듈 형태로 제공하는 거대한 오픈소스 ERP(전사적 자원 관리) 프레임워크입니다. 4만 8천 개가 넘는 스타(Star)와 3만 1천 개의 포크(Fork) 수는 이 프로젝트가 얼마나 강력한 생태계를 구축했는지 증명합니다. CRM, 웹사이트 빌더, 이커머스, 재고 관리, 프로젝트 관리, 회계, 인사 관리 등 기업 운영에 필요한 기능들이 이미 '앱' 형태로 구현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점은 이 모든 것이 파이썬(Python)과 자바스크립트(JavaScript) 기반으로 작성되어 있어, 전 세계의 수많은 개발자가 코드를 뜯어보고 자신의 비즈니스에 맞게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술적인 관점에서 Odoo를 뜯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많습니다. Odoo는 모놀리식(Monolithic)하게 모든 기능을 강제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앱만 설치하면 그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작동하는 구조를 취합니다. 예를 들어 CRM 앱을 쓰다가 재고 관리가 필요해지면, 해당 모듈을 추가하는 것만으로 데이터가 연결됩니다. 이는 우리가 흔히 MSA(Microservices Architecture)를 설계할 때 고민하는 '느슨한 결합(Loose Coupling)'과 '높은 응집도(High Cohesion)'를 비즈니스 애플리케이션 레벨에서 구현한 모범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오픈소스이기에 보안 취약점이나 버그가 발생했을 때 커뮤니티 차원에서 빠르게 대응하고 패치된다는 점은 폐쇄적인 상용 ERP가 가질 수 없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Responsible Disclosure 페이지를 운영하며 보안 이슈를 관리하는 모습은 엔터프라이즈급 솔루션으로서의 신뢰도를 높여줍니다.
많은 주니어 개발자나 초기 창업팀이 "우리는 특별하니까 우리만의 시스템이 필요해"라는 함정에 빠집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송장을 발행하고 재고를 관리하며 고객 리스트를 정리하는 업무 프로세스는 전 세계 기업의 99%가 동일합니다. 이러한 '상품화된(Commodification)' 영역은 직접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검증된 오픈소스를 활용하거나 SaaS를 구매해서 해결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Build vs. Buy' 전략의 핵심입니다. Odoo와 같은 수준 높은 오픈소스 프로젝트는 우리에게 'Buy(구매)'의 효과를 누리면서도, 소스 코드 레벨의 수정 권한을 통해 'Build(구축)'의 유연성까지 제공합니다. 개발자의 시간, 즉 리소스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귀한 시간을 이미 남들이 훌륭하게 만들어 놓은 바퀴를 다시 만드는 데 쓰지 마십시오.
물론 Odoo를 도입하는 것이 만능열쇠는 아닙니다. 파이썬 기반의 백엔드 로직을 이해해야 하고, Odoo만의 QWeb 템플릿이나 ORM 사용법을 익히는 학습 곡선(Learning Curve)은 분명 존재합니다. 하지만 맨땅에서 CRM을 기획하고, DB 스키마를 짜고, 프론트엔드 UI를 그리며 6개월을 허비하는 것보다, 2주 동안 문서를 정독하고 튜토리얼을 따라 하며 Odoo를 커스터마이징하는 것이 비즈니스 관점에서 압도적으로 효율적입니다. 개발자 여러분, 코드를 작성하는 것만이 개발이 아닙니다. 어떤 코드를 작성하지 않을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기존의 훌륭한 자산을 어떻게 우리 비즈니스에 레버리지할지 고민하는 것. 그것이 시니어 레벨로, 그리고 비즈니스를 리딩하는 CTO로 성장하는 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