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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기기 없이 카페에 앉아 UX의 본질을 마주하다

디지털기기 없이 카페에 앉아 UX의 본질을 마주하다

김다은·2026년 1월 4일·3

디지털 기기 없이 카페에 앉아 마주한 현실 세계의 UX와 사용자의 본질에 대한 성찰. 연결을 끊었을 때 비로소 선명해지는 경험의 미학을 이야기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카페에 갈 때마다 가장 먼저 와이파이 비밀번호를 찾고 콘센트가 있는 자리를 스캔하는 전형적인 디지털 유목민이었습니다. 피그마(Figma)를 켜두고 슬랙 알림을 곁눈질하며, 주변의 소음을 백색 소음 삼아 업무 효율을 쥐어짜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휴가 기간, 저는 무모한 실험을 하나 감행했습니다. 바로 '디지털 디톡스'였습니다. 핸드폰과 맥북, 에어팟까지 모든 전자기기를 집에 두고 오직 빈손으로 동네 카페를 찾았습니다. 2025년의 트렌드나 화려한 레퍼런스 수집이 아닌,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처음 30분은 그야말로 금단 현상의 연속이었습니다. 습관적으로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가 빈 공간을 확인하고 헛웃음을 짓기를 반복했습니다. 혹시나 개발팀에서 급한 버그 리포트가 오지 않았을까, PO님이 멘션을 날리지는 않았을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습니다. 연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주는 공포는 생각보다 컸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불안이 가라앉자, 비로소 제 눈앞의 현실이 해상도 높은 4K 영상처럼 선명하게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스크린 속에 갇혀있던 시선이 현실 공간으로 확장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가장 먼저 감각을 깨운 것은 커피였습니다. 출근길 지하철역 앞에서 급하게 사 마시는 종이컵 속 아메리카노는 그저 카페인 수혈을 위한 '연료'에 불과했습니다. 뜨거운 음료가 혀를 데우고, 플라스틱 뚜껑의 냄새가 섞이는 그 경험은 썩 유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도자기 잔에 담긴 커피를 천천히 마시는 행위는 완전히 다른 UX(사용자 경험)였습니다. 무게감 있는 잔의 감촉, 온전한 향기, 여유로운 목 넘김. 우리가 화면 속 버튼의 픽셀 단위 마진에 집착하듯, 현실 세계의 사물 하나하나에도 정교하게 설계된 경험의 미학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습니다.

디지털 장벽이 사라지자, 그제야 '사람'이 보였습니다. 평소라면 노트북 너머로 스쳐 지나갔을 카페 직원들의 움직임이 마치 정교한 서비스 블루프린트(Service Blueprint)처럼 읽혔습니다. 주문이 몰릴 때 그들이 어떻게 동선을 최적화하는지, 더러워진 컵이 세척되어 다시 머신 위로 올라가는 순환 구조는 백엔드 로직만큼이나 흥미로웠습니다. 더 놀라운 건 손님들의 표정이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초조함, 대화 중의 미세한 안면 근육의 변화, 걱정이 담긴 눈빛들. 우리는 매일 '사용자 페르소나'를 정의하고 가상의 시나리오를 쓰지만, 정작 날것 그대로의 인간 감정을 관찰할 기회는 놓치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그들의 눈을 바라보며 저는 텍스트 데이터로는 알 수 없는 비언어적 맥락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며칠간 같은 시간에 빈손으로 카페를 찾으니, 저 스스로가 하나의 관찰 대상이 된 기분이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노트북도 없이 멍하니 앉아 있는 저를 의아하게 쳐다보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 고립감 속에서 저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타인의 생각이나 감정, 혹은 프로젝트의 외부 변수들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클라이언트의 변덕이나 사용자의 예상치 못한 이탈을 우리가 막을 수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의 태도와 관점뿐이었습니다. 외부의 소음에 반응하기보다 내면의 소리에 집중하는 것, 그것이 혼란스러운 실무 현장에서 중심을 잡는 방법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펜과 종이를 챙겨 갔습니다. 키보드로 타이핑할 때는 생각의 속도보다 손가락이 빨라 정제되지 않은 단어들이 쏟아져 나오곤 했습니다. 하지만 펜으로 꾹꾹 눌러쓰는 행위는 필연적으로 사고를 느리게 만듭니다. 손목이 아파오고 글씨가 삐뚤어지는 그 물리적인 저항감(Friction)이 오히려 깊이 있는 사색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UI 디자인을 할 때도 바로 툴을 켜기보다 종이에 와이어프레임을 그리며 로직을 점검하는 과정이 왜 중요한지, 아날로그적 고통이 주는 창조적 가치를 다시금 확인했습니다.

혹시 지금 복잡한 레이아웃과 쏟아지는 티켓들 사이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드시나요? 그렇다면 내일 점심시간에는 잠시 핸드폰을 책상에 두고 밖으로 나가보시는 건 어떨까요. 슬랙 알림이 멈춘 그곳에,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진짜 사용자의 모습과 디자인의 본질이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연결을 끊어야만 비로소 연결되는 것들이 있으니까요.

김다은
김다은주니어 UI/UX 디자이너

'예쁜데요?'보다 '지표가 올랐네요'를 듣고 싶은 3년차 프로덕트 디자이너. 감성의 영역을 논리의 언어로 통역하며, 개발자와 기획자 사이에서 살아남는 실전 생존기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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