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언젠가 올 거라 예상은 했지만, 생각보다 그 시점이 빠르고 규모가 큽니다.
메모리 반도체 시장, 특히 DRAM 분야는 그동안 '철옹성'이었습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이 3개 회사가 전 세계 시장의 90% 이상을 꽉 쥐고 있었죠.
그런데 이 견고한 3강 체제에 균열을 내겠다는 도전자가 공식적으로 등판했습니다.
바로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국가대표, 창신메모리(CXMT)입니다.
저도 B2B SaaS를 운영하면서 글로벌 시장의 흐름을 늘 예의주시하는데요.
이번 뉴스는 단순히 '중국 회사가 상장한다' 수준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이건 '반도체 치킨게임'의 양상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탄입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이걸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비즈니스 관점에서 뜯어봤습니다.
1. 6조 원이라는 실탄
CXMT가 상하이 증권거래소 커촹반(STAR Market)에 상장 신청서를 냈습니다.
목표 조달 금액은 약 42억 2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6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규모입니다.
중국 반도체 기업들이 자국 자본시장을 통해 얼마나 거대한 자금을 끌어모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시죠.
이 돈, 어디에 쓸까요?
복잡한 거 다 빼고 딱 세 가지입니다.
- CAPEX(설비 투자): 웨이퍼 생산 라인 업그레이드
- 공정 기술 고도화: 더 미세한 공정으로 진입
- R&D: 차세대 메모리 연구
결국 '물량'과 '기술' 두 마리 토끼를 다 잡겠다는 겁니다.
2. 적자 8조 원에도 멈추지 않는 이유
재무제표를 뜯어보면 흥미로운 지점이 보입니다.
CXMT는 지금 돈을 벌고 있는 회사가 아닙니다.
2022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누적 순손실이 약 58.5억 달러(약 8조 원)가 넘습니다.
SaaS 스타트업으로 치면, 엄청난 'Burn Rate(현금 소진율)'를 감수하면서 J커브 성장을 그리고 있는 셈입니다.
매출은 빠르게 늘고 있지만, 감가상각비와 R&D 비용이 워낙 커서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죠.
하지만 이들은 2025년 흑자 전환(Turnaround)을 자신하고 있습니다.
근거는 명확합니다.
AI 붐으로 인한 메모리 수요 폭발, 그리고 타이트한 공급 상황입니다.
지금 시장 상황이 공급자 우위(Seller's Market)로 돌아서고 있다는 걸 정확히 파악하고 승부수를 던진 겁니다.
3. "기술력? 이제 무시 못 합니다"
우리가 흔히 중국 제품이라고 하면 '저가형', '카피캣'을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현장의 엔지니어들이나 업계 관계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분위기가 다릅니다.
CXMT의 기술 로드맵, 생각보다 탄탄합니다.
이미 DDR5, LPDDR5X 같은 최신 규격 제품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특히 모바일용 LPDDR5X는 전송 속도가 10,667 Mbps에 달한다고 발표했습니다.
물론 수율(Yield)이나 신뢰성 측면에서는 아직 검증이 더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주장하듯 "글로벌 선두 업체들과 대체로 동등한 수준"까지 따라왔다는 건,
더 이상 기술 격차만으로 안심할 수 없는 단계에 진입했다는 뜻입니다.
2016년에 설립된 회사가 10년도 안 돼서 여기까지 온 겁니다.
4. 그들의 진짜 무기: '내수 생태계'
제가 가장 위협적으로 보는 건 기술 그 자체보다 '고객 리스트'입니다.
알리바바 클라우드, 텐센트, 샤오미, 오포, 비보...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중국의 빅테크 기업들이 전부 CXMT의 고객입니다.
이게 무슨 뜻일까요?
중국은 세계 최대의 반도체 소비국입니다.
자국 기업들이 "우리 거 써주자"라고 마음먹고 밀어주기 시작하면,
삼성이나 하이닉스가 기술적으로 조금 더 우위에 있더라도 점유율을 방어하기 쉽지 않습니다.
실제로 Omdia 예측에 따르면, 2025년 2분기 CXMT의 글로벌 점유율은 약 4%까지 올라갈 것으로 보입니다.
작아 보이나요?
반도체 시장에서 4%는 시장 가격을 흔들 수 있는 의미 있는 숫자입니다.
마무리하며
이번 IPO는 중국 정부의 '반도체 굴기'가 꺾이지 않았음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미국의 제재가 심해질수록, 중국은 오히려 내부 결속을 다지며 IDM(종합 반도체 기업) 모델을 완성해가고 있습니다.
국내 반도체 엔지니어분들이나 관련 업계에 계신 분들은 막막함을 느끼실 수도 있습니다.
저가 물량 공세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등에 업은 경쟁자와 싸워야 하니까요.
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제는 '범용 메모리' 싸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HBM(고대역폭 메모리)이나 PIM(지능형 메모리) 같은 '대체 불가능한 고부가가치 기술' 격차를 더 벌려야 합니다.
결국 비즈니스의 본질은 똑같습니다.
경쟁자가 쫓아오기 힘든 '해자(Moat)'를 얼마나 깊게 파느냐의 싸움입니다.
CXMT의 6조 원 승부수.
이 거대한 파도가 우리에게 위기일지, 아니면 또 다른 혁신의 트리거가 될지.
냉정하게 지켜보고 준비해야 할 때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