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플러스엑스 인턴 시절, 가장 두려웠던 순간은 아트 디렉터님의 모니터 앞 피드백 시간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저를 가장 미치게 만들었던 피드백은 바로 "이거 좀 더 말랑말랑한 느낌 없니?" 혹은 "너무 딱딱해, 조금 더 엣지있게 가보자" 같은 추상적인 요청들이었습니다. 당시 저는 미대 출신이 아니라는 콤플렉스 때문에 이런 형용사적 표현을 '감각의 영역'으로 치부하고 좌절하곤 했습니다. 도대체 '말랑한 것'과 '엣지있는 것'의 기준이 뭐란 말입니까. 그저 제 눈에는 픽셀 덩어리일 뿐이었는데 말이죠.
하지만 연차가 쌓이고 여러 프로젝트를 거치며 깨달은 사실은, 이런 추상적인 요구사항을 단순히 심미적인 취향의 문제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디자인은 설득의 과정이고, 설득에는 반드시 논리가 필요합니다. 우리가 흔히 "느낌적인 느낌"이라고 퉁치고 넘어가는 형태 심리학에도 명확한 근거가 존재합니다. 바로 '부바(Bouba)'와 '키키(Kiki)' 효과입니다. 오늘 이 글을 읽고 나면 여러분은 클라이언트나 기획자가 던지는 모호한 형용사를 아주 구체적인 UI 언어로 통역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더 이상 "그냥 예뻐서요"라고 말하다가 깨지는 일은 없어야 하니까요.

아주 유명한 실험 하나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위 이미지에 있는 두 도형 중 어느 것이 '부바'이고 어느 것이 '키키'일까요? 언어와 문화권에 상관없이 전 세계 사람들의 90% 이상은 둥근 도형을 '부바', 뾰족한 도형을 '키키'라고 답합니다. 이것은 소리와 시각적 형태 사이의 공감각적 연결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우리는 뇌과학적으로 둥근 형태에서 부드러움, 편안함, 느림을 느끼고, 뾰족한 형태에서 날카로움, 긴장감, 빠름을 느끼집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디자인을 할 때 단순히 '보기에 좋은 것'을 넘어 '인지적으로 합당한 형태'를 찾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문제는 많은 주니어 디자이너들이 이 원리를 UI 컴포넌트에 적용할 때 실수를 범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금융 앱을 디자인한다고 가정해 봅시다. 기획자는 "신뢰감을 주고 싶으니 단단하게 만들어주세요"라고 합니다. 여기서 잘못된 접근은 단순히 폰트의 굵기(Weight)만 올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부바/키키' 이론을 대입해 보면, 사용자가 내 돈이 안전하다고 느끼게 하려면 날카로운 직각보다는 심리적 안정감을 주는 라운드 처리가 필요할 수도 있고, 반대로 주식 차트나 급상승 알림처럼 긴박한 정보를 전달해야 할 때는 의도적으로 날카로운 '키키'적 요소를 사용해 긴장감을 조성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제가 쏘카에서 프로덕트 디자인 업무를 지원할 때 겪었던 일입니다. 당시 신규 기능의 팝업창 디자인을 두고 의견이 갈렸습니다. 한쪽은 "친근하게 가자"며 모든 모서리를 둥글게 깎자고 했고, 다른 한쪽은 "정보 전달이 명확해야 한다"며 각진 박스를 선호했습니다. 이때 저는 단순히 시안 두 개를 만들어 투표에 부치는 대신, 해당 팝업의 목적을 다시 물었습니다. 그 팝업은 '긴급 점검 알림'이었습니다. 사용자의 주의를 환기시키고 즉각적인 인지를 시켜야 하는 상황이었죠. 즉, '부바'보다는 '키키'의 전략이 필요한 순간이었습니다. 저는 이 논리를 바탕으로 불필요한 장식을 배제하고, 명도 대비를 높이며, 모서리의 라운드 값을 최소화한(2px 이하) 시안을 제안했고, 이는 별다른 이견 없이 채택되었습니다.
여러분이 지금 작업하고 있는 피그마(Figma) 파일을 열어보세요. 혹시 버튼은 둥글둥글한 '부바' 스타일인데, 그 안에 들어간 아이콘은 날카로운 스트로크의 '키키' 스타일이지 않나요? 혹은 브랜드 컬러는 파스텔 톤으로 편안함을 주는데, 폰트는 끝이 날카로운 명조 계열을 쓰고 있지는 않나요? 이런 시각적 불일치(Cognitive Dissonance)는 사용자에게 무의식적인 불편함을 줍니다. 디자이너가 "뭔가 이상한데?"라고 느끼는 그 지점이 바로 논리가 어긋난 지점입니다. 픽셀을 옮길 때는 반드시 그 이유가 설명되어야 합니다.
개발자에게 핸드오프(Handoff) 문서를 넘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border-radius: 8px로 해주세요"라고 적는 것과, "이 모달은 사용자에게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는 요소이므로, 심리적 안정감을 위해 radius 값을 8px로 크게 잡았습니다"라고 코멘트를 남기는 것은 천지 차이입니다. 후자의 경우, 개발자는 나중에 임의로 값을 수정하지 않을 것이고, 여러분은 '문서 깎는 노인'이라는 별명과 함께 디테일에 강한 디자이너로 인정받게 될 것입니다.
디자인은 예술이 아닙니다. 특히 UI/UX 디자인은 철저한 공학이자 심리학입니다. "그냥 느낌이 좋아서"라는 말은 아마추어의 언어입니다. 클라이언트가 "부드럽게 해주세요"라고 말하면, 속으로 '아, 부바(Bouba) 효과를 원하는구나'라고 해석하고, 그에 맞는 곡률과 타이포그래피, 모션 값을 논리적으로 설계해 보세요. 여러분의 디자인이 설득력을 얻는 순간, 비로소 야근은 줄어들고 여러분의 가치는 올라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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