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2B SaaS를 운영하며 가장 소름 끼치는 순간은 서버가 터질 때가 아닙니다. 바로 창업자가 "완벽한 제품을 만들고 있다"며 3년째 베타 테스트도 안 돌리고 개발만 하고 있을 때입니다.
최근 Hacker News에서 눈에 띄는 글을 하나 봤습니다. 제목이 아주 가관이더군요. "지오펜스 기반 소셜 네트워크 앱, 6년 개발." 2026년 초 출시 예정이랍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이 개발자라면 "우와, 6년이나 공들인 장인정신!"이라고 감탄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제 눈에는 그저 '시장 검증을 피하고 싶은 겁쟁이의 도피처'로 보입니다. 오늘은 왜 이런 식의 개발이 비즈니스 자살 행위인지, 그리고 진짜 돈 버는 프로덕트를 만들려면 당장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야기해보겠습니다.
왜 6년이나 걸렸을까? (feat. 기능의 늪)
이 앱의 소개 페이지를 뜯어봤습니다. 기능이 화려합니다.
- 커스텀 퍼리미터(반경) 설정
- 익명 모드
- 전 세계 장소 검색
- 인기 채팅룸 리스트
- 장소 기반 히트맵
개발자 출신으로서 장담하는데, 이거 기술적으로 엄청난 난이도가 필요한 기능들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6년이 걸렸을까요? 답은 뻔합니다. '핵심 가치'를 증명하는 대신 '부가 기능'을 덕지덕지 붙이며 안심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채팅이 좀 안 터지네? 히트맵 기능을 넣으면 사람들이 좋아할 거야."
"아직 유저가 없네? 익명 모드를 추가하면 부담 없이 들어오겠지?"
이건 기획이 아닙니다. 그냥 개발하고 싶어서 개발하는 겁니다. 고객이 원하지도 않는 기능을 만드느라 통장 잔고가 마르는 줄도 모르고 모니터 뒤에 숨어 있는 꼴이죠.
PMF(Product-Market Fit)는 코드로 찾는 게 아닙니다
제가 토스에서 PO로 일할 때, 그리고 지금 회사를 창업하면서 뼈저리게 느낀 게 있습니다. 코드는 비즈니스를 검증하는 수단일 뿐, 그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없습니다.
6년 동안 개발만 했다는 건, 6년 동안 시장과 대화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만약 6년 전, 딱 하나의 기능(예: 반경 1km 내 익명 채팅)만 가진 MVP를 3개월 만에 출시했다면 어땠을까요?
- 사람들이 쓴다 -> 투자 받고 고도화 (성공)
- 사람들이 안 쓴다 -> 빠르게 접고 피벗 (실패 비용 최소화)
이 앱의 개발자는 2번의 상황을 마주하기 싫어서 계속 개발 기간을 늘리며 '출시 연기'라는 마취제를 맞고 있는 겁니다. 2026년 출시? 그때 가서 시장 반응이 차가우면 잃어버린 8년은 누가 보상해줍니까?
'장인정신'이라는 허울 좋은 핑계
개발자들은 흔히 '레거시 없는 깔끔한 코드', '완벽한 아키텍처'에 집착합니다. 저도 SI 프로젝트 리더 시절엔 그랬습니다. 하지만 내 돈 태워 창업해보니 알겠더군요.
고객은 당신의 코드가 스파게티인지 클린 코드인지 1도 관심 없습니다.
고객이 돈을 지불하는 건 당신의 기술력이 아니라, 그 기술이 해결해주는 '문제'입니다. 6년 공들인 앱이 해결하려는 문제가 과연 지금 당장 6년을 기다릴 만큼 시급한가요? 페이스북, 당근마켓, 틴더가 이미 다 해결해준 문제 아닙니까?
생존을 위한 액션 아이템: 지금 당장 배포하세요
당신이 지금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든, 초기 스타트업을 하든 똑같습니다. 이 글을 읽고 뜨끔했다면, 아래 체크리스트를 확인하고 당장 실행하세요.
- 핵심 기능 1개만 남기고 다 쳐내세요.
로그인? 소셜 로그인 하나면 됩니다. 관리자 페이지? DB 직접 수정하면 됩니다. 화려한 UI? 부트스트랩 쓰세요. 그 1개 기능이 작동하는지만 확인하십시오. - 출시 일정을 '다음 달'이 아니라 '이번 주'로 잡으세요.
기능이 부족해서 욕먹는 게 낫습니다. 아무도 안 쓰는 것보다, 욕하면서 써주는 유저가 100배는 더 가치 있습니다. 욕먹는다는 건 적어도 관심은 있다는 증거니까요. - 지표를 '코드 라인 수'가 아니라 '전환율'로 바꾸세요.
오늘 커밋을 몇 번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늘 랜딩 페이지 방문자 중 몇 명이 '사전 예약' 버튼을 눌렀느냐, 그게 당신의 생명줄입니다.
마치며
이 앱이 2026년에 출시되어 대박이 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건 로또 당첨 확률에 비즈니스를 거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도박사가 아니라 사업가입니다. 확률을 통제해야 합니다.
모니터 뒤에서 "이 기능만 더 만들면..."이라고 중얼거리지 마세요. 그 시간에 밖으로 나가서 잠재 고객을 만나거나, 엉성하더라도 릴리즈 버튼을 누르십시오.
그래서, 지금 당신이 짜고 있는 그 코드가 우리 회사 통장에 1원이라도 기여합니까? 이 질문에 1초 만에 대답할 수 없다면, 당장 IDE 끄고 문제 정의부터 다시 하시기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