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이라 포장된 "스캠 코인" 제안에 2억 원이 찍힌 지갑을 보고, 잠시나마 흔들렸던 나의 위선

혁신이라 포장된 "스캠 코인" 제안에 2억 원이 찍힌 지갑을 보고, 잠시나마 흔들렸던 나의 위선

박지민·2026년 1월 26일·3

오픈소스 기여를 빌미로 한 2억 원의 스캠 코인 제안. 그 달콤한 유혹 앞에서 엔지니어가 지켜야 할 논리와 양심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새벽 3시, 터미널 창의 커서만 깜빡이는 적막 속에서 저는 모니터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LLM 인퍼런스 비용을 줄이겠다고 며칠 밤낮으로 양자화(Quantization) 모델을 깎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LinkedIn 알림이 울렸습니다. 해외의 낯선 프로필이 보낸 메시지였습니다. 내용은 대략 이랬습니다. "당신의 오픈소스 기여에 감명받았다. 커뮤니티가 당신을 위해 Solana 기반의 코인을 만들었고, 이미 수수료 수익이 쌓여있다. 지갑만 연결하면 바로 수령 가능하다."

첨부된 스크린샷에 찍힌 금액은 약 20만 달러. 한화로 2억 원이 넘는 돈이었습니다.

솔직히 고백합니다. 그 순간, 저는 '이게 뭐지?'라고 의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심장이 쿵쾅거리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드디어 내 노력이 보상받는구나"라는 얄팍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기 때문입니다.

최근 업계에는 'Bags'라는 플랫폼을 이용한 기이한 유행이 번지고 있습니다. Sean Goedecke가 지적했듯, Steve Yegge나 Geoff Huntley 같은 존경받는 엔지니어들조차 이 흐름에 휘말렸습니다. 사기꾼들은 유명 엔지니어의 오픈소스 프로젝트 이름(예: Gas Town, Ralph Wiggum)을 따서 $GAS나 $RALPH 같은 코인을 만듭니다. 그리고 거래 수수료의 일부가 원작자에게 자동으로 지급되도록 설정해버립니다.

엔지니어는 동의한 적도, 심지어 안 적도 없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당신을 위한 후원금이 쌓여있다"며 수억 원을 들이밉니다.

이것은 후원이 아닙니다. 정교하게 설계된 사회 공학적 해킹이자, 개발자의 '명예'를 인질로 잡는 약탈적 행위입니다.

Steve Yegge는 결국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는 "오픈소스 자금 조달의 새로운 방식"이라며 $GAS를 옹호하는 글을 썼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기술적인 관점에서 봅시다. $GAS 코인을 산다고 해서 Gas Town의 LLM 에이전트 성능이 좋아집니까? $RALPH를 매수한다고 해서 Claude Code의 루프가 더 효율적으로 돕니까?

전혀 아닙니다. 이 코인들은 해당 GitHub 리포지토리의 코드와 아무런 기술적 연관성이 없습니다. 그저 JSON 데이터 쪼가리가 블록체인 위를 떠다닐 뿐입니다. 투자자들이 산 것은 기술이 아니라, 유명 개발자가 그 코인을 언급해 줄 것이라는 '기대감' 뿐입니다.

개발자인 우리는 누구보다 논리적이라고 자부합니다. 하지만 "수억 원의 공돈" 앞에서는 그 논리 회로가 마비됩니다. 우리가 평소 혐오하던 '비효율'과 '거품'이, 내 지갑을 채워줄 때는 '혁신적인 생태계'로 둔갑해 보이는 착시 현상입니다.

제가 그날 밤 겪은 유혹도 그랬습니다. 인프라 비용 때문에 10원 단위로 씨름하던 제게, 그 돈은 너무나 달콤해 보였습니다. "이 돈이면 GPU 서버를 몇 대를 더 살 수 있는데..."라는 자기합리화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하지만 멈췄습니다. 그 돈은 내 코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준 것이 아니라, 내 명성을 이용해 한탕 하려는 투기꾼들이 만들어낸 거품이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돈을 수령하고 트윗 하나를 올리는 순간, 나를 믿는 주니어 개발자들과 순수한 팔로워들은 그 스캠 코인의 설거지 대상이 될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데이터를 전처리하고, 모델을 튜닝하고, 레이턴시를 줄이는 사람들입니다.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데이터 덩어리에 가격표를 붙여 파는 장사꾼이 아닙니다.

오픈소스 생태계가 척박하다는 것은 핑계가 될 수 없습니다. 굶주렸다고 해서 독이 든 사과를 베어 물면, 죽는 것은 나뿐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생태계 전체가 됩니다.

그날 새벽, 저는 답장을 보내는 대신 조용히 브라우저 탭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터미널로 돌아와 멈춰있던 커서를 움직였습니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CUDA 메모리 누수를 잡기 위해서였습니다.

화려한 에어드롭은 없습니다. 트윗 한 번으로 벌 수 있는 수억 원도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제가 작성한 코드 한 줄 한 줄에는, 누군가를 속이지 않았다는 떳떳함이 담겨 있습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커뮤니티를 위한 코인"이라는 명목으로 DM을 받은 개발자가 있다면, 부디 그 숫자에 눈이 멀어 엔지니어의 영혼을 팔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만들어야 할 것은 지속 가능한 기술이지, 누군가의 지갑을 털기 위한 펌프 앤 덤프 도구가 아닙니다.

박지민
박지민AI 솔루션 기업 CTO

논문 속의 정확도(Accuracy)보다 통장 잔고를 지키는 추론 비용(Inference Cost)을 중시하는 생존형 기술 리더입니다. 화려한 데모 뒤에 숨겨진 엔지니어링의 고통과 비즈니스 가치를 냉철하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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