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실에서 주니어 기획자들이 가장 자주 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PO님, 이번 배포 후 CS 접수 건수가 0건입니다. 반응이 아주 좋습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저는 노트북을 덮습니다.
그건 '반응이 좋은' 게 아닙니다.
당신이 무언가 놓치고 있다는 가장 강력한 신호입니다.
오늘은 심리학에서 말하는 '가용성 휴리스틱(Availability Heuristic)'이 어떻게 프로덕트 팀을 망가뜨리는지 이야기하려 합니다.
과거 데이터가 귀하던 시절, 우리는 눈앞에 있는 데이터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우리는 정보 과부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Amplitude, Datadog, Google Analytics... 대시보드만 켜면 숫자가 쏟아집니다.
여기서 치명적인 문제가 발생합니다.
우리는 대시보드에 '보이는 숫자'만 믿고, '보이지 않는 현상'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정 짓습니다.
심리학자 가이 호크만은 이를 '불가용성 편향(UnAvailability Bias)'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우리가 기대했던 정보(예: 에러 로그, 불만 VOC)가 보이지 않으면, 그 문제가 실제로 없다고 믿어버리는 현상입니다.
정보가 무한한 시대에 '정보의 부재'는 더 이상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 뇌는 편하게 생각하려 하죠.
"로그가 없네? 그럼 에러도 없는 거지."
제가 카드사 앱 개편 프로젝트를 리딩할 때 겪은 일입니다.
오픈 첫날, 결제 실패 로그가 평소의 10분의 1로 줄었습니다.
개발팀은 "시스템이 안정화되었다"며 환호했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달랐습니다.
트래픽은 그대로인데 실패 로그만 줄어든다? 이건 '성공'이 아니라 '침묵'입니다.

데이터를 뜯어보니 황당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결제 버튼을 누르는 자바스크립트가 특정 OS에서 아예 작동하지 않았던 겁니다.
버튼이 눌리지 않으니 API 호출도 안 되고, 당연히 실패 로그도 남지 않았습니다.
고객들은 화가 나서 앱을 강제 종료하고 있었는데, 우리는 '보이지 않는 데이터' 덕분에 평화로운 착각에 빠져 있었던 겁니다.
이게 바로 현대적인 가용성 휴리스틱의 함정입니다.
과거에는 눈에 띄는 사건을 과대평가하는 게 문제였다면, 지금은 눈에 띄지 않는 사건을 '없는 것' 취급하는 게 문제입니다.
레거시 시스템을 다루는 SI 프로젝트나, 빠르게 배포해야 하는 스타트업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개발자나 기획자는 자신이 설계한 로직 안에서만 세상을 봅니다.
'이 시나리오대로라면 여기서 로그가 찍혀야 해.'
그런데 로그가 안 찍히면? 시나리오 밖에서 유저가 이탈했거나, 아키텍처 결함으로 로깅 시스템 자체가 먹통이 된 가능성은 배제합니다.
단순히 "지금 내 눈에 안 보이니까"요.
의학계에서도 의사들이 자신이 최근에 본 적 없는 희귀병을 진단 목록에서 아예 배제해버리는 오진 사례가 빈번하다고 합니다.
우리의 프로덕트도 똑같습니다.
대시보드의 지표가 조용하다면, 그건 평화가 아니라 폭풍전야일 확률이 높습니다.
진정한 데이터 드리븐(Data-Driven)은 대시보드에 찍힌 숫자를 해석하는 게 아닙니다.
대시보드에 '찍히지 않은' 숫자가 무엇인지, 왜 그곳이 비어있는지를 의심하는 것입니다.
CS가 0건이라고요?
CS 접수 페이지로 가는 링크가 깨져있는지 먼저 확인하세요.
전환율이 유지되고 있다고요?
그 전환율을 만들어내는 모수가 비정상적으로 줄어들고 있지는 않은지 확인하세요.
데이터가 없다는 것은 '문제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당신이 '문제가 있다는 증거를 수집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막연한 감으로 "괜찮겠지"라고 넘기지 마세요.
보이지 않는 것을 의심하고, 그 침묵 뒤에 숨은 진짜 유저의 비명소리를 찾아내는 것.
그게 연봉 1억 받는 PO와 매일 삽질만 하는 기획자의 차이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