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회의실에서 종종 끔찍한 제안을 듣습니다. "결제 전환율이 안 나오는데, 팝업 닫기 버튼을 3초 뒤에 뜨게 하면 어떨까요?" 혹은 "포인트랑 현금 가치를 헷갈리게 만들어서 비싸다는 느낌을 없애죠."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저는 노트북을 덮습니다. 그건 기획이 아닙니다. 사기입니다. 당장의 KPI를 맞추기 위해 사용자의 인지 부조화를 이용하는 것, 우리는 이걸 '다크패턴(Dark Pattern)'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이 게으른 기획의 대가는 생각보다 혹독합니다.
최근 이탈리아 경쟁 당국(AGCM)이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상대로 칼을 빼 들었습니다. 대상은 모바일 게임 시장의 거물인 '디아블로 이모탈'과 '콜 오브 듀티 모바일'입니다. 혐의 내용은 명확합니다. 사용자가, 특히 아동들이 게임 내에서 무엇을 얼마나 쓰고 있는지 모르게 만들었다는 겁니다.
이 사건은 단순히 게임 회사가 과징금 좀 맞고 끝날 문제가 아닙니다. 프로덕트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이번 조사의 핵심 쟁점을 뼈저리게 분석해야 합니다. 규제 당국이 문제 삼은 포인트는 정확히 우리가 OKR 달성을 위해 유혹받는 그 지점들에 있기 때문입니다.
첫째, 가치 환산의 복잡성입니다. AGCM은 게임 내 가상화폐 시스템이 실제 돈의 가치를 가린다고 지적했습니다. 핀테크에서 일할 때도 주니어들이 흔히 하는 실수입니다. "1,000원을 100 '젬'으로 바꾸고, 아이템은 50 '젬'에 팔면 싸게 느껴지겠죠?" 네, 싸게 느껴질 겁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나중에 카드 명세서를 보고 '속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서비스의 리텐션(Retention)은 바닥을 칩니다. 디아블로 이모탈은 제작 재료와 진행 가속 아이템을 복잡한 화폐 시스템 뒤에 숨겨두고 최대 200달러까지 판매했습니다. 이는 사용자의 합리적 소비 판단을 마비시키는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둘째, 강압적인 구매 유도입니다. '지금 안 사면 평생 손해'라는 식의 타임 리밋(Time-limit) 마케팅이나, 과도한 번들 판매 전략이 도마 위에 올랐습니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이런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것은 비즈니스를 넘어 윤리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문제입니다. 무료 플레이(F2P) 게임이 수익을 내야 하는 구조적 한계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원해서' 사는 것과 '강요당해서' 사는 것은 데이터의 질이 다릅니다. 전자는 LTV(생애 가치)를 높이지만, 후자는 이탈률만 높입니다.
셋째, 기본 설정(Default)의 함정입니다. AGCM은 해당 게임들이 별도의 제한 없이 미성년자가 결제할 수 있도록 기본 설정되어 있다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또한, 가입 시 모든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도록 유도하는 UI 흐름도 문제 삼았습니다. UX 기획자라면 알 겁니다. 사용자는 기본값을 잘 바꾸지 않습니다. 이를 악용해 "동의 안 함" 버튼을 숨기거나 회색으로 처리하는 건, 당장 가입자 수는 늘릴지 몰라도 결국 규제 리스크라는 거대한 부채를 쌓는 행위입니다.
제가 토스에서 대출 비교 서비스를 고도화할 때 가장 경계했던 것이 바로 이런 '눈속임'입니다. 금리가 조금이라도 더 낮은 상품을 명확하게 보여주지 않고, 수수료가 높은 상품을 교묘하게 상단에 배치했다면 당장의 매출은 올랐을 겁니다. 하지만 그랬다면 지금의 토스는 없었을 겁니다. 금융이든 게임이든, 사용자는 바보가 아닙니다. 한두 번은 속아주지만, 세 번째는 가차 없이 앱을 삭제합니다.
이번 이탈리아 당국의 조사는 "전문적 주의 의무(duty of professional diligence)" 위반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제 다크패턴은 단순한 '상술'이 아니라, 기업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전문성'의 부재로 해석된다는 뜻입니다.
PO나 기획자 여러분, 솔직히 말해봅시다. 다크패턴을 쓰고 싶은 유혹은 '자신감 부족'에서 옵니다. 우리 프로덕트가 정가에 팔릴 만큼 매력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사용자의 눈을 가리는 꼼수를 쓰는 것 아닙니까?
제발 부탁인데, 매출 그래프 꺾인다고 해서 사용자 경험을 망가뜨리는 기획안 좀 가져오지 마십시오. 리소스 낭비입니다. 대신 "사용자가 왜 우리 서비스에 돈을 써야 하는가?"라는 본질적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기능을 고민하세요. 규제 당국이 들이닥치기 전에, 그리고 사용자가 영원히 떠나기 전에 말입니다. 정당하게 설득하고 투명하게 팔지 못하면, 그 비즈니스는 어차피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