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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체용 아님(Not for Human Consumption)'이라는 라벨 뒤에 숨겨진 욕망과 데이터의 간극

'인체용 아님(Not for Human Consumption)'이라는 라벨 뒤에 숨겨진 욕망과 데이터의 간극

박지민·2026년 1월 3일·3

FDA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성장하는 펩타이드 회색 시장을 기술적 관점에서 분석합니다. Retatrutide의 혁신과 BPC-157의 위험성, 그리고 데이터 검증의 중요성을 다룹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최근 기술 업계의 화두는 단순히 LLM(Large Language Model)이나 GPU 클러스터에만 머물러 있지 않습니다. 실리콘밸리의 개발자들, 그리고 저와 같은 엔지니어링 리더들 사이에서 알음알음 퍼지는 또 다른 '최적화'의 영역이 바로 바이오해킹, 구체적으로는 '펩타이드(Peptides)' 시장입니다. 최근 접한 Vectorculture의 리포트를 읽으며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FDA 규제의 사각지대에서 형성된 거대한 회색 시장(Grey Market)이 마치 초창기 오픈소스 생태계나 규제 없는 암호화폐 시장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AI 아키텍처 대신, 우리 몸을 해킹하려는 이 대담하고도 위험한 시도들에 대해, 그리고 그 속에 숨겨진 데이터의 진실에 대해 기술적 관점에서 이야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우리가 흔히 '혁신'이라 부르는 것들은 종종 제도권 밖에서 먼저 태동합니다. 2025년 12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다는 소위 "Chinese Peptide Rave"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저는 묘한 기시감을 느꼈습니다. 참가자들이 코워킹 스페이스에 모여 서로 주사 기술을 배우고, 3만 5천 명이 넘는 텔레그램 커뮤니티에서 크라우드소싱으로 제3자 실험실 테스트 비용을 모금하는 모습. 이는 마치 깃허브(GitHub)에서 오픈소스 프로젝트를 포크(Fork)하고 집단지성을 통해 디버깅하는 개발자들의 모습과 소름 끼칠 정도로 닮아 있습니다. 하지만 코드가 버그를 일으키면 롤백(Rollback)하면 그만이지만, 생체 데이터는 롤백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이 현상은 훨씬 더 위태롭습니다.

기술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Gen3 작용제(Agonists)'라 불리는 Retatrutide(LY3437943)의 아키텍처입니다. 이를 소프트웨어 버전에 비유하자면, Gen1인 Liraglutide가 온프레미스 서버였고, Gen2인 Semaglutide(위고비 등)가 초기 클라우드였다면, Retatrutide는 완벽하게 오케스트레이션된 쿠버네티스(Kubernetes) 환경과 같습니다. GLP-1, GIP, 그리고 결정적으로 글루카곤(Glucagon) 수용체까지 동시에 활성화하는 이 '삼중 작용' 메커니즘은 단순히 식욕을 억제하는 것을 넘어, 간의 지방산 산화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강제로 끌어올립니다. 임상 3상 데이터에서 보여준 28.7%의 체중 감소율은 실로 압도적인 퍼포먼스입니다. 과거 보디빌더들이 생명을 담보로 DNP 같은 독극물을 섭취하며 얻으려 했던 열생성 효과를, 이제는 정교하게 설계된 펩타이드 하나로 안전하게 구현해낸 셈입니다. 이것은 명백한 '기술적 특이점'입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로서 냉정하게 바라봐야 할 지점은 '데이터의 검증'입니다. Retatrutide가 철저한 임상 데이터(NEJM, Nature Medicine 등)로 무장한 '엔터프라이즈급 솔루션'이라면, 소위 '연구용 펩타이드'라 불리는 BPC-157이나 TB-500은 아직 프로덕션 환경(인체)에서 검증되지 않은 '베타 버전'에 불과합니다. 설치류 실험에서 혈관 생성을 돕고 도파민 경로를 조절한다는 데이터는 존재하지만, 인간을 대상으로 한 유의미한 임상 결과는 전무합니다. 마치 localhost에서는 완벽하게 돌아가던 코드가 배포 서버에서는 터져버리는 것처럼, 쥐에게서 보인 효능이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되리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런데도 수많은 사람들이 인플루언서의 말만 믿고 자신의 몸을 테스트베드 삼아 이 물질들을 주입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용기라기보다는 무모한 'FAFO(Fuck Around and Find Out)'에 가깝습니다.

규제의 칼날은 예상대로 매섭게 들어오고 있습니다. FDA는 최근 품절(Shortage) 예외 조항을 종료하며, 503A 및 503B 조제 약국들이 Semaglutide나 Tirzepatide의 복제본을 만드는 길을 원천 봉쇄했습니다. "인체용 아님(Not for Human Consumption)"이라는 라벨을 붙이고 "연구 목적"이라 주장하며 판매되던 회색 시장의 펩타이드들 역시, 치료 효과를 암시하는 순간 "승인되지 않은 신약"으로 간주되어 강력한 제재를 받게 됩니다. 우리가 클라우드 비용을 아끼려고 규정되지 않은 API를 쓰다가 서비스가 중단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공급망(Supply Chain)의 투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중국의 불명확한 실험실에서 생산된 펩타이드가 콜드체인도 없이 배송되는 현실은 QA(품질 보증)가 전혀 없는 소프트웨어를 금융 시스템에 도입하는 것만큼이나 위험천만합니다.

결국 이 모든 현상은 '최적화에 대한 인간의 욕망'과 '검증된 안전성' 사이의 거대한 줄다리기입니다. Retatrutide와 같은 혁신적인 약물은 분명 인류의 대사 질환을 해결할 '성배'가 될 잠재력이 충분합니다. 데이터는 거짓말을 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검증되지 않은 BPC-157 같은 물질에 열광하는 현상은, 우리가 기술을 대할 때 흔히 저지르는 실수인 '막연한 기대감(Hype)'에 기인합니다.

CTO로서, 그리고 한 명의 엔지니어로서 제언합니다. 혁신적인 기술은 언제나 매혹적입니다. 하지만 그것을 나의 시스템(신체 혹은 비즈니스)에 적용할 때는 반드시 '검증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남들이 다 쓴다더라", "이론적으로 완벽하다더라"는 말 대신, 임상 결과라는 로그(Log)를 확인하십시오. 우리의 몸은 한 번 망가지면 다시 띄울 수 있는 도커 컨테이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박지민
박지민AI 솔루션 기업 CTO

논문 속의 정확도(Accuracy)보다 통장 잔고를 지키는 추론 비용(Inference Cost)을 중시하는 생존형 기술 리더입니다. 화려한 데모 뒤에 숨겨진 엔지니어링의 고통과 비즈니스 가치를 냉철하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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