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구소 시절, 막내 엔지니어가 센서 하나를 제대로 고정하지 못해 데이터를 통째로 날린 적이 있습니다. 3D 프린터로 뽑은 하우징은 공차 계산 실패로 맞지 않았고, 글루건으로 떡칠 된 프로토타입은 데모 시연 10초 전에 전선이 끊어졌죠.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드웨어의 불확실성은 소프트웨어 버그 따위와는 차원이 다른 공포라는 것을요. 그런데 최근 '3Duino'라는 툴을 보고 든 생각은 하나입니다. 이제 단순히 '손기술' 좋은 엔지니어는 도태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왔습니다.
솔직히 말해, 저는 'AI가 모든 걸 해준다'는 식의 마케팅을 혐오합니다. 특히 하드웨어 쪽은 더 심하죠. 물리 법칙을 무시한 채 생성된 3D 모델이나, 실제 핀맵(Pin-map)과는 전혀 맞지 않는 회로도를 뱉어내는 LLM을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그건 혁신이 아니라 산업 폐기물을 만드는 과정일 뿐이니까요. 하지만 이번에 공개된 3Duino는 접근 방식이 다릅니다. 이들은 "모든 걸 할 수 있다"고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 제약 조건 안에서라면, 당신의 노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주겠다"고 제안합니다. 엔지니어링의 본질인 트레이드오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3Duino의 작동 방식은 꽤나 합리적입니다. 3D 모델을 넣고, 입력(센서)과 출력(모터 등)을 정의한 뒤, 자연어로 로직을 설명하면 끝입니다. 그러면 이 소프트웨어는 알아서 부품이 들어갈 자리를 3D 모델에 파내고, 마운트 홀을 생성하고, 필요한 자재 명세서(BOM)와 아두이노 코드까지 뱉어냅니다. 하드웨어는 Arduino Nano 33 BLE Rev2 같은 범용성 높은 보드를 기준으로 잡았습니다. 즉, 밑바닥부터 회로를 설계하고 하우징을 깎는 '노가다'를 자동화한 것입니다.

이게 왜 무서운 변화일까요? 비용 관점에서 생각해보세요. 주니어 엔지니어가 인터랙티브한 장난감 시제품 하나를 만드는 데 꼬박 2주가 걸린다고 칩시다. 인건비와 재료비, 그리고 그 기간 동안 다른 중요한 업무를 못 하는 기회비용까지 합치면 수백만 원이 깨집니다. 그런데 3Duino 같은 툴을 쓰면 이걸 몇 분 만에 끝냅니다. 물론 양산 퀄리티는 아닙니다. 하지만 초기 검증 단계에서 2주와 10분은, 스타트업 생존을 가르는 결정적인 속도 차이입니다.
많은 개발자가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본인의 가치가 '복잡한 배선을 납땜하는 능력'이나 'CAD로 0.1mm 오차를 수정하는 인내심'에 있다고 믿는 겁니다. 냉정하게 말해서 그건 이제 기계가 더 잘합니다. 3Duino가 보여주는 건 명확합니다. 인간은 '어떤 센서를 써서 어떤 가치를 만들 것인가'라는 상위 레벨의 로직에만 집중하라는 겁니다. PCB 패턴을 예쁘게 그리는 건 이제 자랑이 아닙니다. 그건 그냥 엑셀 함수를 손으로 계산하고 있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물론 3Duino에도 한계는 명확합니다. 복잡한 산업용 기기를 설계하거나 고속 신호 처리가 필요한 작업에는 쓸 수 없겠죠. 정해진 하드웨어 스펙 안에서만 동작하니까요. 하지만 바로 그 '제약' 덕분에 동작을 보장합니다. 환각(Hallucination)에 빠져 그럴듯한 쓰레기를 만드는 범용 AI보다, 확실한 제약 안에서 동작하는 자동화 도구가 현업에서는 백 배 더 가치 있습니다.
우리 팀 주니어들에게도 항상 강조합니다. "삽질은 한 번으로 족하다." 디버깅 능력을 키우는 건 좋지만, 도구가 해결해 줄 수 있는 단순 반복 작업에 청춘을 바치지는 마세요. 3Duino 같은 툴을 적극적으로 도입해서 리소스 낭비를 줄이십시오. 기술적 환상에 빠지지 않고, 도구의 한계와 효용을 명확히 파악해서 비용을 절감하는 것. 그게 진짜 엔지니어의 실력입니다. 3년 뒤에도 살아남고 싶다면, 손에 든 인두기부터 내려놓고 설계의 패러다임을 바꾸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