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적으로 완벽한 '예쁜 쓰레기'를 만들고 6개월을 날린 뒤, 비로소 깨달은 돈의 원리

기술적으로 완벽한 '예쁜 쓰레기'를 만들고 6개월을 날린 뒤, 비로소 깨달은 돈의 원리

최수연·2026년 1월 6일·3

기술적 완벽함에만 집착하다 실패한 경험을 통해 깨달은, 개발자가 비즈니스 로직과 시장의 흐름을 이해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다룹니다.

솔직히 고백하겠습니다. 저는 과거에 '비즈니스 로직'을 혐오하는 개발자였습니다. 코드는 거짓말을 하지 않지만, 사업팀의 말은 늘 화려한 미사여구로 포장된 거짓말처럼 들렸기 때문입니다. 송금 서비스의 트랜잭션 처리 속도를 0.1초 줄이는 데 밤을 새웠지만, 정작 그 서비스의 수익 구조(BM)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기술적으로 우아한 아키텍처를 설계하는 것만이 제 자존심이었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기술적으로 완벽했던 그 기능은 오픈 당일, 트래픽이 '0'에 수렴하며 폐기 처순을 밟았습니다. 사용자가 왜 돈을 쓰는지, 시장이 이 기능을 왜 필요로 하는지에 대한 고민 없이 그저 '만들고 싶어서' 만든 결과였습니다. 뼈아픈 실패였습니다. 그때 저는 깨달았습니다. 코드를 짜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이 코드가 돌아가는 '세상'을 해킹하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최근 전설적인 해킹 매거진 Phrack에 실린 cts의 글 "Calling All Hackers"를 읽으며, 그때의 기억이 다시금 떠올랐습니다. 저자는 말합니다. 해커란 단순히 컴퓨터 시스템을 뚫는 사람이 아니라,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하는 사람"이라고요.

코드는 수단일 뿐, 본질은 '욕망의 설계'입니다

우리는 흔히 해커라고 하면 터미널 앞에 앉아 리눅스 커널을 건드리는 모습을 상상합니다. 하지만 진정한 해커는 google.com을 쳤을 때 일어나는 DNS 조회 과정뿐만 아니라, 로빈후드(Robinhood) 앱에서 옵션 거래를 할 때 뒤단에서 벌어지는 PFOF(Payment For Order Flow)의 흐름까지 꿰뚫고 있어야 합니다.

글에서 소개된 '한 쓰레기 코인(Shitcoin)의 탄생' 과정을 봅시다. 소위 'Asian Arrangement'라 불리는 펌프 앤 덤프(Pump and Dump) 구조는 기술이 아닌 철저한 이해관계의 산물입니다.

  1. 거래소: 토큰을 상장시켜 투자자를 끌어모으고 수수료를 챙깁니다.
  2. 마켓 메이커(MM): 유동성을 공급해 차트가 '건강해 보이도록' 만듭니다. 그들은 콜옵션을 보수로 받기에 가격을 띄울 유인이 확실합니다.
  3. VC와 창업자: 락업(Lock-up) 기간 동안 덤핑을 막고, 개미들에게 물량을 넘길 시점(Exit)을 계산합니다.

이 구조에서 '블록체인 기술의 혁신성'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토큰 가격은 올라야 한다(Tokens go up)"는 목적을 위해 설계된 정교한 경제 시스템만 있을 뿐입니다. 개발자 관점에서는 사기극에 불과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말해, 이들은 시장이라는 거대한 컴퓨터를 해킹하여 자원을 배분(혹은 착취)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우리는 이 냉혹한 메커니즘을 역겨워할 것이 아니라, 그 기저에 깔린 '돈의 흐름'을 이해해야 합니다.

시장은 거대한 컴퓨터입니다

저자는 "시장은 가격, 밸류에이션, 자원 배분을 계산하는 컴퓨터"라고 정의합니다. 그런데 우리 개발자들은 어떤가요?

MSA(Microservices Architecture)를 도입하고, 쿠버네티스(Kubernetes) 설정을 최적화하는 데에는 혈안이 되어 있으면서, 정작 우리 회사의 밸류에이션이 왜 이렇게 책정되었는지, 내가 만든 기능이 재무제표의 어느 항목에 기여하는지에는 무관심합니다. "그건 경영진이 할 일이죠"라고 선을 긋습니다.

아니요, 틀렸습니다. 시스템의 병목을 찾는 것이 엔지니어의 역할이듯, 비즈니스 모델의 병목을 이해하는 것도 엔지니어의 몫입니다. 왜 끔찍한 성능을 가진 경쟁사의 앱이 우리보다 잘 나가는지, 왜 기술적 부채가 가득한 레거시 시스템이 여전히 돈을 벌어다 주는지 분석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모른다면, 당신은 그저 부품일 뿐입니다.

당신은 무엇을 해킹하고 있습니까?

주니어 개발자분들과 면담을 하다 보면, 최신 라이브러리나 화려한 스택에 집착하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하지만 저는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코드가 비즈니스 임팩트를 만들어내고 있습니까?

진정한 해커는 시스템의 취약점(Vulnerability)뿐만 아니라, 시장의 미세구조(Market Microstructure)와 사람들의 심리적 취약점까지 파악합니다. 기계는 결국 사람에 의해 프로그래밍되기 때문입니다. 매니저의 욕망, 사용자의 불안, 시장의 광기. 이 모든 것이 변수(Variable)입니다.

제가 6개월간 공들여 만든 '예쁜 쓰레기'를 폐기하며 흘렸던 식은땀을 여러분은 흘리지 않기를 바랍니다. 모니터 밖으로 나오십시오. IDE(통합 개발 환경) 너머에 있는 '돈'과 '사람'이라는 거대한 시스템을 들여다보십시오.

기술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기술이 해결해야 할 '진짜 문제'를 정의하는 것은 세상을 이해하는 통찰력입니다. 지금 당신은 코드를 짜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을 해킹하고 있습니까?

최수연
최수연핀테크 유니콘 리드 PO

전통 금융의 보수적인 장벽을 부수고, 숫자로 증명되지 않는 직관을 가장 경계하는 12년차 프로덕트 오너입니다. '아름다운 기획서'보다 '지저분한 엑셀 데이터'에서 고객의 욕망을 읽어내며, 치열한 핀테크 전쟁터에서 생존한 실전 인사이트를 기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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