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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두 개의 부품으로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엔지니어링의 본질

단 두 개의 부품으로 '보이지 않는 데이터'를 시각화하는 엔지니어링의 본질

박지민·2026년 1월 3일·5

단 두 개의 부품으로 Wi-Fi 신호를 시각화하는 프로젝트를 통해, 복잡한 현대 기술 속에서 가시성과 적정 기술, 그리고 엔지니어링의 본질에 대한 통찰을 다룹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하루 종일 복잡한 쿠버네티스 클러스터와 LLM(거대언어모델) 아키텍처 다이어그램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가끔 현기증이 날 때가 있습니다. 수천 개의 마이크로서비스가 얽혀 돌아가는 이 거대한 시스템이 때로는 실체가 없는 허상처럼 느껴지기도 하니까요. 개발자로서 우리가 다루는 데이터는 대부분 '보이지 않는' 영역에 존재합니다. 트래픽은 숫자로 찍히는 로그일 뿐이고, 지연 시간(Latency)은 그래프의 선일 뿐입니다. 그런데 최근 흥미로운 기술 아티클 하나를 접하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 두 개의 전자 부품만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Wi-Fi 신호를 시각화하는, 지극히 원초적이지만 공학적으로 완벽한 프로젝트였습니다.

이 프로젝트의 구성은 믿기 힘들 정도로 단순합니다. 1N5711 쇼트키 다이오드(Schottky Diode) 하나와 붉은색 LED 하나가 전부입니다. 배터리도, 복잡한 PCB 기판도 필요 없습니다. 이 두 부품을 적절히 비틀어 연결하는 것만으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2.4GHz 대역의 전파(RF) 에너지를 포집해 LED를 깜빡이게 만듭니다. 원리는 고전적인 '크리스탈 라디오'와 같습니다. 안테나 역할을 하는 LED의 다리가 RF 신호를 수신하면, 다이오드가 교류를 직류로 정류(Rectification)하고, 축적된 전하가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LED를 발광시키는 것입니다. 라우터나 스마트폰 근처에 가져가면 패킷이 전송될 때마다 LED가 반응합니다.

CTO로서 제가 이 간단한 회로에서 주목한 것은 '가시성(Observability)'과 '적정 기술'에 대한 통찰입니다. 우리는 종종 시스템 모니터링을 위해 무겁고 비싼 APM(Application Performance Monitoring) 도구를 도입합니다. Datadog이나 Prometheus 같은 훌륭한 도구들이 있지만, 때로는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기 위해 너무 많은 레이어를 거쳐야 할 때가 있습니다. 반면, 이 회로는 물리 계층(Physical Layer)에서 일어나는 트래픽의 버스트(Burst)를 어떤 소프트웨어보다 직관적으로 보여줍니다. "데이터가 흐르고 있는가?"라는 가장 기초적인 질문에 대해, 0과 1의 빛으로 즉답을 주는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가 주는 또 다른 교훈은 '부품 선정의 중요성'입니다. 아무 다이오드나 쓴다고 작동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실리콘 다이오드는 스위칭 속도가 느려 2.4GHz라는 고주파 대역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그래서 역회복 시간(Trr)이 극도로 짧은 쇼트키 다이오드를 써야 합니다. 또한, 파란색이나 흰색 LED는 구동 전압이 높아 반응하지 않습니다. 가장 낮은 전압에서 켜지는 붉은색 LED여야만 미세한 RF 에너지로도 작동합니다. 이는 우리가 AI 모델을 선택하거나 데이터베이스를 선정할 때와 정확히 일치하는 맥락입니다. "최신이니까", "성능이 좋으니까"라는 이유로 무작정 고스펙의 기술을 도입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하려는 문제의 제약 조건(여기서는 미세한 전압과 고주파)에 딱 맞는 솔루션을 찾아내는 것이 엔지니어링의 핵심입니다.

주니어 시절, 네트워크 장애 원인을 찾지 못해 며칠 밤을 새운 적이 있었습니다. 온갖 로그를 뒤졌지만 원인은 찾을 수 없었죠. 나중에 알고 보니 물리적인 케이블 접촉 불량이 문제였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 하더라도 우리가 다루는 코드는 결국 물리적인 하드웨어 위에서 전기 신호로 바뀐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요. 이 간단한 '크리스탈 Wi-Fi 탐지기'는 그 기본을 다시금 상기시켜 줍니다.

여러분이 만약 지금 복잡한 추상화 계층 속에서 길을 잃은 느낌이 든다면, 잠시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이 작은 실험을 해보시기를 권합니다. 납땜도 필요 없습니다. 그저 부품 두 개를 손으로 비틀어 연결하고 라우터 앞에 대보는 것만으로 충분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던 데이터의 흐름이 붉은 빛으로 깜빡이는 순간, 우리가 다루고 있는 기술의 실체와 물리적 감각을 되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가장 단순한 도구가 가장 명쾌한 답을 줍니다.

박지민
박지민AI 솔루션 기업 CTO

논문 속의 정확도(Accuracy)보다 통장 잔고를 지키는 추론 비용(Inference Cost)을 중시하는 생존형 기술 리더입니다. 화려한 데모 뒤에 숨겨진 엔지니어링의 고통과 비즈니스 가치를 냉철하게 분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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