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 스타트업 컨퍼런스

우리는 왜 다시 불편한 MP3의 시대로 회귀하려는가

우리는 왜 다시 불편한 MP3의 시대로 회귀하려는가

김현수·2026년 1월 3일·2

스트리밍 구독의 시대에 데이터 주권과 소유의 가치를 찾아 개인용 미디어 서버를 구축하고 음악을 직접 소장하려는 개발자들의 고찰과 시도를 다룹니다.

매달 신용카드 명세서를 받아볼 때마다 저를 묘하게 괴롭히는 항목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뮤직 스트리밍 서비스 구독료입니다. 10년 전, 처음 Spotify 같은 서비스를 접했을 때의 충격은 대단했습니다. 수천만 곡의 라이브러리를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다는 건 혁명과도 같았으니까요. 하지만 최근 연말 결산(Wrapped) 리포트를 받아보고는 헛웃음이 나왔습니다. 제가 일 년 동안 들은 노래의 90%는 특정 밴드의 앨범 몇 장과, 코딩할 때 집중하기 위해 틀어놓는 반복적인 lo-fi 트랙들이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듣지도 않는 수천만 곡의 이용료를 왜 내고 있는 걸까? 내가 좋아하는 이 음악들을 진짜로 소유하고 있기는 한 걸까?"

최근 개발자 커뮤니티 Hacker News에서도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는 동료들의 뜨거운 토론이 있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단순히 "옛날이 좋았지"라는 식의 감상적인 레트로 열풍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너무나도 개발자스러운 관점에서, 데이터 주권과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고찰에 가까웠습니다. 스트리밍 서비스는 편리하지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알고리즘'이라는 우리 안에 갇혀 있습니다. 한 사용자가 지적했듯, 우리가 스트리밍을 떠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음악 파일이 없어서가 아니라, "내 취향을 분석해 주는 추천 시스템"을 자가 구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공감합니다. NAS에 FLAC 파일을 채우는 건 일도 아니지만, 기분 따라 노래를 골라주는 DJ 기능을 직접 구현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니까요.

하지만 현업 엔지니어들의 해결책은 역시나 기발하고 집요했습니다. 단순히 파일을 폴더에 넣고 듣는 수준을 넘어, 자신만의 '개인용 스트리밍 서버'를 구축하는 방식들이 공유되었습니다. 가장 대중적인 접근은 집에 있는 NAS나 구형 맥 미니에 Plex나 Kodi 같은 미디어 서버를 올리고, Plexamp 같은 전용 클라이언트로 외부에서 스트리밍하는 방식입니다. 이 구조를 갖추면 스트리밍의 편의성은 유지하면서도, 음원 파일은 온전히 나의 통제하에 둘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Syncthing을 이용해 여러 기기 간에 물리적으로 파일을 동기화하거나, Bandcamp에서 구매한 고해상도 FLAC 파일을 무손실로 감상하는 즐거움을 되찾은 분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저를 가장 뜨끔하게 만든 의견은 "인터넷은 생각보다 취약하다"는 지적이었습니다. 특정 회사의 정책 변화, 라이선스 만료, 혹은 검열로 인해 내가 즐겨 듣던 플레이리스트가 하루아침에 회색으로 비활성화되는 경험, 다들 한 번쯤 있으실 겁니다. 어떤 개발자는 이를 두고 "로컬 복사본이 없다면 그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고 단언하더군요. 다소 극단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클라우드 인프라 의존도가 높은 요즘 같은 시대에 '소유'의 가치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말이었습니다. 기업이 내 데이터 접근권을 쥐고 흔드는 상황에서 벗어나,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앨범을 직접 리핑하고 태그를 정리하는 과정은 번거롭지만 확실한 '내 것'을 만드는 과정입니다.

물론 MP3 시절로의 회귀가 마냥 낭만적인 것은 아닙니다. 메타데이터를 일일이 정리해야 하고, 새로운 음악을 발굴하기 위해 Last.fm이나 커뮤니티를 직접 뒤져야 하는 수고로움이 따릅니다. 하지만 개발자인 우리에게 이 과정은 꽤 즐거운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Docker 컨테이너로 Navidrome 서버를 띄우고, 리버스 프록시를 설정하고, 나만의 라이브러리를 큐레이션 하는 과정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사이드 프로젝트니까요. 무한한 선택지 속에서 알고리즘이 떠먹여 주는 음악을 수동적으로 소비할 것인지, 아니면 조금 투박하더라도 내가 직접 선택하고 소유한 음악을 들을 것인지. 이번 주말에는 먼지 쌓인 외장 하드를 꺼내 잠들어 있던 MP3 파일들을 정리해 보는 건 어떨까요? 커피 한 잔과 함께 추억의 윈앰프(Winamp) 스킨을 입힌 플레이어로 음악을 듣다 보면, 잊고 있던 개발의 로망이 되살아날지도 모릅니다.

김현수
김현수10년 차 시니어 개발자

복잡한 기술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것을 즐깁니다. 10년의 개발 여정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공유합니다.

김현수님의 다른 글

댓글 0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