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개발 3년 차 무렵까지 소위 '복사-붙여넣기' 엔지니어에 가까웠습니다. 기능 구현에만 급급해서 라이브러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데이터베이스가 내부적으로 어떤 자료구조를 쓰는지 깊이 고민하지 않았죠. 그러다 대규모 트래픽을 처리하는 프로젝트에서 크게 넘어진 적이 있습니다. 단순히 코드를 잘 짜는 게 아니라, 시스템의 밑바닥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더미처럼 쏟아지더군요.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겉핥기식 지식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요. 최근 해커뉴스(Hacker News)에서 우연히 발견한 현대 물리학 책에 관한 토론이 유독 눈에 밟힌 것도, 아마 그때의 기억과 맞닿아 있어서일 겁니다.
이 스레드의 발단은 꽤 흥미롭습니다. 작성자는 현대 물리학의 네 가지 영역—고전 역학, 양자 역학, 통계 역학, 전자기학 등—을 아우르는, 설명이 잘 되어 있으면서도 간결한(Succinct) 책을 찾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가 새로운 기술 스택을 도입할 때 "너무 얕은 튜토리얼은 싫고, 그렇다고 논문만 파기엔 시간이 없는" 딜레마와 비슷하죠. 여기서 언급된 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개발자인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작성자는 John Dirk Walecka의 저서들을 눈여겨보고 있는데, 이 책들은 수학적 엄밀성을 갖춘 심도 있는 시리즈입니다. 반면, 댓글에서는 Young and Freedman의 <University Physics>를 추천하더군요. 이 책은 넓고 얕게 훑어주는 최고의 입문서지만, 깊이 파고들고 싶은 사람에겐 다소 부족할 수 있다는 평이 있었습니다.

이 논쟁은 우리 개발 생태계의 '학습 곡선'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University Physics>가 마치 "10분 만에 배우는 React" 같은 친절한 가이드라면, Walecka의 책들은 리액트의 소스 코드를 직접 뜯어보며 Fiber 아키텍처와 조정(Reconciliation) 알고리즘을 파헤치는 과정과 같습니다. 댓글 중 한 분이 남긴 조언이 인상 깊었습니다. "Walecka의 책은 훌륭하지만, 선형대수나 미분방정식 같은 수학적 기초가 없으면 따라가기 힘들다." 개발로 치면, 운영체제의 메모리 관리나 네트워크 프로토콜에 대한 이해(수학적 기초) 없이, 무작정 쿠버네티스나 카프카 같은 복잡한 분산 시스템(현대 물리학)을 깊이 이해하려는 것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흔히 '실무 중심'이라는 핑계로 기초를 건너뛰려 합니다. 저 역시 그랬습니다. 당장 돌아가는 코드가 급했으니까요. 하지만 스레드 작성자가 굳이 구(舊) 소련 시대의 Ivanov 책이나 수학적으로 엄밀한 Walecka 책을 찾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진짜 원리'를 알고 싶기 때문입니다. 코드가 왜 터지는지, 왜 이 쿼리가 느린지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하려면 결국엔 추상화된 레이어를 걷어내고 로우 레벨(Low-level)로 내려가야 합니다. 물리학에서 수학이 언어이자 도구이듯, 우리에게는 자료구조, 알고리즘, 그리고 컴퓨터 구조가 그 역할을 합니다. 10년 차가 넘어가니, 화려한 프레임워크 사용법보다 이런 기본기가 시스템의 안정성을 결정짓는다는 걸 매일 체감합니다.
물론, 모든 개발자가 물리학자처럼 살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양자 역학 공식을 유도할 일은 없으니까요. 하지만 이 해커뉴스 스레드에서 느껴지는 '지적 탐구심'과 '본질에 닿으려는 태도'는 꼭 배우고 싶습니다. 작성자는 남들이 좋다는 베스트셀러에 만족하지 않고, 자신의 수준에 딱 맞으면서도 지적 갈증을 채워줄 '밀도 높은' 자료를 찾아 헤맵니다. AI가 코드를 대신 짜주는 시대라지만, 그 코드가 '왜' 그렇게 동작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엔지니어뿐입니다. Cursor나 Claude가 아무리 똑똑해도, 아키텍처의 근본적인 결함을 찾아내는 직관은 수많은 삽질과 깊이 있는 공부에서 나오니까요.
오늘 밤에는 바쁜 업무는 잠시 내려놓고, 먼지 쌓인 전공 서적이나 평소에 "너무 어렵다"고 미뤄뒀던 공식 문서(Documentation)의 Deep Dive 섹션을 펼쳐보는 건 어떨까요? 물리학도들이 우주의 원리를 탐구하며 희열을 느끼듯, 우리도 우리만의 소우주인 소프트웨어의 심연을 들여다보는 즐거움을 느껴보시길 바랍니다. 때로는 가장 멀리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길이, 가장 단단하게 성장하는 지름길이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