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나도 기술 블로그를 제대로 운영해봐야지"라는 다짐을 합니다. 저 역시 신입 시절, 거창한 포부로 블로그를 개설했다가 소재 고갈과 바쁜 업무를 핑계로 방치했던 기억이 납니다. 사실 우리가 글을 쓰기 어려운 이유는 '대단한 기술적 성취'나 '완벽한 정답'을 내놓아야 한다는 강박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2025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개발자들의 놀이터이자 가장 냉정한 검증대인 해커뉴스(Hacker News)에서 살아남은 상위 블로거들을 분석해 보니, 흥미롭게도 그들이 가진 무기는 화려한 미사여구나 난해한 기술이 아니었습니다. 오늘은 이들의 데이터를 통해, 개발자로서 우리가 어떤 태도로 지식을 공유하고 기록해야 하는지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선 3년 연속 1위를 차지한 사이먼 윌리슨(Simon Willison)의 사례는 우리에게 '큐레이션의 힘'을 보여줍니다. 2025년은 모두가 AI에 열광했던 해였지만, 그만큼 검증되지 않은 정보와 기업들의 마케팅 용어가 범람하던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사이먼이 독보적이었던 이유는 그가 특정 벤더의 물건을 파는 '세일즈맨'이 아니라, 직접 도구를 써보고 분석하는 '파워 유저'의 관점을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20개의 프랜차이즈 식당을 소유한 사장이 추천하는 맛집보다, 1주일에 20번 외식하는 미식가 친구의 추천이 더 신뢰가 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는 거창한 논문을 쓰기보다, 틱톡이나 트위터(X) 같은 폐쇄적인 플랫폼에서 발견한 흥미로운 인사이트를 오픈 웹으로 가져와 짧은 해설을 덧붙이는 '링크 블로깅' 방식을 택했습니다. 이는 "내 글이 완벽해야 한다"는 부담을 내려놓고, 개발 생태계의 흐름을 읽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기여가 될 수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음으로 주목할 인물은 2위를 기록한 제프 기어링(Jeff Geerling)입니다. 그는 100만 구독자를 보유한 유튜버이지만, 영상의 대본을 그대로 복사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게으른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영상은 시청각적인 흐름이 중요하지만, 텍스트는 논리적인 구조와 읽는 속도가 중요합니다. 제프는 맥 미니(Mac mini)의 저장장치를 개조하는 과정을 영상으로 보여주면서도, 블로그에서는 텍스트 매체에 최적화된 형태로 내용을 완전히 재구성했습니다. 이는 개발자가 문서를 작성하거나 PR(Pull Request) 설명을 쓸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태도입니다. 상대방이 정보를 습득하는 매체(코드 리뷰 창, 슬랙, 이메일 등)에 맞춰 내용을 배려하고 구조화하는 것, 그것이 바로 엔지니어링 커뮤니케이션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3위에 오른 션 괴데케(Sean Goedecke)의 전략은 '주니어 개발자의 막막함을 해소해 주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는 대기업의 복잡한 사내 정치나 비효율적인 프로세스를 단순히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엔지니어링 관점에서 그 원인을 분석했습니다. 많은 개발자가 기술적인 문제에는 강하지만, "왜 내 코드는 좋은데 승진을 못 할까?" 혹은 "왜 우리 회사의 레거시는 이렇게 엉망일까?"라는 질문 앞에서는 좌절하곤 합니다. 션은 이런 현상을 명쾌하게 설명함으로써 독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습니다. 또한 그의 글이 처음부터 대박이 난 것은 아니었다는 점도 기억해야 합니다. 그는 같은 글을 여러 번 다시 다듬어 제출하는 끈기를 보였고, 결국 커뮤니티의 인정을 받아냈습니다.
결국 2025년 해커뉴스를 지배한 블로거들의 공통점은 '솔직함'과 '독자 중심의 사고'였습니다. AI 툴을 직접 써보고 느낀 점을 가감 없이 공유하거나, 영상이 아닌 텍스트 독자를 위해 글을 다시 쓰고, 엔지니어가 겪는 현실적인 고충을 논리적으로 풀어나가는 과정이 그들을 특별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블로그 글쓰기를 주저하고 있는 동료가 있다면, 너무 무겁게 생각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습니다. 거창한 튜토리얼이 아니더라도, 오늘 해결한 버그 하나, 혹은 감명 깊게 읽은 아티클에 대한 짧은 단상이라도 좋습니다. 그 작은 기록들이 모여 누군가에게는 확실한 이정표가 될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