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맘때면 "올해는 꼭 러스트(Rust)를 마스터하겠다"거나 "쿠버네티스 자격증을 따겠다" 같은 기술 습득 위주의 목표가 주를 이뤘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며칠 전, 해외 개발자 커뮤니티인 해커 뉴스(Hacker News)에 올라온 "지금 무슨 작업을 하고 계신가요? (2026년 1월)"라는 스레드를 정독하다가 흥미로운 흐름을 발견했습니다. 단순히 새로운 언어를 배운다는 차원을 넘어, 기술을 대하는 엔지니어들의 태도가 사뭇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 스레드에 올라온 전 세계 동료들의 프로젝트를 통해,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변화는 단연 'AI와의 공존'이었습니다. 스레드 작성자가 언급한 '바이브 코딩(vibe-coding)'이라는 표현이 참 재미있습니다. 이는 AI가 코드 작성을 보조하는 상황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문화를 뜻합니다. 실제로 한 개발자는 클로드 코드(Claude Code)를 활용해 웹 스크래핑과 데이터 수집을 자동화하는 '리버스 API 엔지니어링'을 실험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개발자는 리브레오피스(LibreOffice)용 AI 확장을 만들어 출시 3주 만에 1,700건이 넘는 다운로드를 기록했다고 하더군요. 예전 같으면 스크래핑 로직을 짜느라 며칠 밤을 새웠을 일들이, 이제는 AI 에이전트에게 맥락을 던져주고 검수하는 형태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 역시 초창기에는 "AI가 내 코드를 대체하면 어쩌지"라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지만, 이제는 이를 도구로 활용해 생산성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생존 전략임을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AI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은 이 시점에도 '근본적인 엔지니어링'에 대한 갈증은 여전하다는 사실입니다. 누군가는 오픈스캐드(OpenSCAD)로 현미경용 편광기를 3D 프린팅하고, 마그네틱 카드의 자기장을 시각화하는 물리적인 프로젝트에 몰두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이는 아날로그 컴퓨터를 직접 조립하며 컴퓨팅의 원리를 밑바닥부터 파헤치고 있었죠. 심지어 웹 애플리케이션을 위한 파이프라인 지향 DSL(도메인 특화 언어)을 직접 설계하며, 러스트 런타임과 타입스크립트 언어 서버까지 구현한 용자도 있었습니다. AI가 코드를 대신 짜주는 시대에 굳이 파서 컴비네이터 라이브러리를 만들고, 새로운 언어 문법을 고민하는 이들을 보며 저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결국 혁신은 단순히 AI를 잘 쓰는 것(Prompting)을 넘어, 그 AI가 동작하는 기반 시스템이나 물리적 세계와의 접점을 이해하는 '깊이'에서 나온다는 것을 이들이 증명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B2B 에이전트를 위한 '영구 메모리(Persistent Memory)'를 개발 중이라는 프로젝트였습니다. 현업에서 LLM을 다루다 보면 가장 큰 병목이 바로 '컨텍스트(Context)'의 휘발성인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스템을 설계하고 제품화하는 과정은 단순 코딩이 아닌 아키텍처링의 영역입니다. AI 시대의 개발자는 코더(Coder)가 아니라, AI라는 강력한 엔진을 어디에 배치하고 어떻게 연결할지 고민하는 설계자가 되어야 함을 다시금 깨닫습니다. 또한, 파이어폭스에 곧 적용될 네이티브 CSS 모듈을 미리 실험하거나, iOS용 비디오 신시사이저 앱을 만드는 등 플랫폼의 최신 기능을 기민하게 포착하여 사용자 경험으로 연결하려는 시도들도 여전히 유효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마음을 가장 뭉클하게 했던 것은 한 개발자가 언급한 'TADA 리스트'였습니다. 우리는 늘 해야 할 일(TODO) 목록에 짓눌려 삽니다. 백로그는 줄어들 기미가 안 보이고, 신기술은 쏟아지니까요. 하지만 그 개발자는 2025년에 자신이 '완료한 일'들을 기록하며 성취감을 되새기고 있었습니다. 10년 차가 된 저도 가끔은 번아웃이 올 때가 있는데, 앞으로 무엇을 더 해야 할지 조급해하기보다 내가 무엇을 해냈는지 돌아보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2026년, 기술은 더 빨라지겠지만 우리의 중심은 흔들리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AI를 영리하게 활용하되, 기술의 깊이를 탐구하는 장인 정신을 잃지 않고, 가끔은 자신의 'TADA 리스트'를 적어보며 스스로를 다독이는 한 해가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