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고백하자면, 비 오는 날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출근길 신발 젖는 것도 싫지만, 배달 플랫폼 스타트업에 있을 때 '우천 시 주문 폭주'로 서버가 터져나갔던 트라우마 때문이죠.
트래픽 알람이 빗소리처럼 울려댈 때마다 모니터 앞에서 기도만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런데 최근 개발자 커뮤니티에서 본 리포트 하나가 제 뒤통수를 세게 때렸습니다.
"빗방울로 전기를 만든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 기계공학과 연구팀이 개발한 기술인데, 내용을 뜯어볼수록 우리네 백엔드 아키텍처와 소름 돋게 닮아 있더군요.
단순한 과학 뉴스가 아닙니다.
이건 '버려지는 리소스'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핵심은 간단해요.
탄소섬유 복합재에 빗방울이 닿는 순간, 정전기 원리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합니다.
빗방울 하나(92µL)로 무려 60볼트(V)를 만들어냅니다.
발전기 4개를 연결하니 LED 전구 144개가 순식간에 켜지더군요.
여기서 제가 주목한 건 전기가 아니라 '구조'였습니다.
연구팀은 '연꽃잎 효과'를 차용했습니다.
표면에 미세한 요철을 만들어 물방울이 퍼지지 않고 튕겨 나가게 만들었죠.
물이 닿는 면적은 최소화하고, 튕겨 나가는 에너지는 극대화하는 방식입니다.
이 대목을 읽는데, 5년 전 제가 짰던 스파게티 코드가 생각나서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당시 저는 쏟아지는 트래픽(빗물)을 무작정 받아내려고만 했습니다.
DB 커넥션 풀을 무식하게 늘리고, 인스턴스만 수직 확장(Scale-up)했었죠.
결과는 뻔했습니다.
서버는 물 먹은 솜처럼 무거워졌고, OOM(Out Of Memory)으로 장렬히 전사했습니다.
UNIST 연구팀의 접근법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빗물을 '흡수'하는 게 아니라, 잘 '튕겨내면서' 에너지를 뽑아냈습니다.
우리 시스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들어오는 요청(Request)을 무조건 동기적으로 처리하려다 병목을 만들 게 아니라,
Kafka 같은 메시지 큐를 이용해 유연하게 흘려보내거나,
Circuit Breaker를 통해 감당 불가능한 트래픽은 빠르게 튕겨내야(Fail Fast) 시스템이 삽니다.
심지어 이 탄소섬유 발전기는 '자가 세정' 기능도 있습니다.
도시의 매연이나 먼지가 묻어도 빗물에 씻겨 내려가 성능이 유지된다고 하네요.
이건 마치 잘 설계된 Self-Healing(자가 치유) 시스템을 보는 듯했습니다.
쿠버네티스(k8s)가 죽은 파드(Pod)를 알아서 살려내고, 오토스케일링으로 리소스를 조절하는 그 우아함 말입니다.
비가 많이 올수록, 즉 악천후일수록 더 많은 전기를 생산한다는 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개발자에게 '장애 상황'은 피하고 싶은 악천후입니다.
하지만 시니어 개발자가 되고 보니 알겠습니다.
평온할 때는 시스템의 구멍이 보이지 않습니다.
트래픽이 몰아치고, 에러 로그가 비처럼 쏟아질 때야말로 '진짜 데이터'가 쌓이는 순간입니다.
그 로그들을 ELK Stack이나 Datadog으로 씹어먹으며 인사이트를 뽑아내는 것.
그게 바로 빗물로 60볼트 전기를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혹시 지금 이 순간에도 쏟아지는 에러 로그나 레거시 코드 때문에 막막하신가요?
그건 그냥 버려지는 빗물이 아닙니다.
여러분을 더 단단한 엔지니어(탄소섬유)로 만들어줄 에너지원입니다.
잘 튕겨내고, 잘 흘려보내세요.
그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새 여러분의 커리어에도 환한 LED 불이 켜질 겁니다.
저도 오늘은 집에 가서, 묵혀뒀던 사이드 프로젝트의 Dead Letter Queue부터 다시 까봐야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