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에서 Staff Engineer로 일하며 가장 뼈저리게 느낀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시스템의 가장 큰 위협은 해커가 아니라, 기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정치인들이 만든 규제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가용성 99.999%를 위해 로드 밸런서를 튜닝하고, 데이터 무결성을 위해 카프카(Kafka) 파이프라인을 점검합니다. 하지만 누군가 법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데이터 패킷을 열어보라"고 명령한다면, 우리가 쌓아 올린 견고한 보안 아키텍처는 순식간에 모래성이 됩니다.
영국이 지금 그 위험한 도박을 시작했습니다. 영국 정부는 방송 통신 규제 기관인 Ofcom에 암호화 백도어 시행을 검토하라고 공식 지시했습니다. 표면적인 명분은 언제나 그렇듯 '안전'입니다. 아동 학대나 테러를 막겠다는 달콤한 포장지를 씌웠지만, 그 안을 들여다보면 엔지니어로서 경악을 금치 못할 기술적 만행이 숨어 있습니다.
이 사안의 핵심은 'Online Safety Act'의 121조(Section 121)입니다. 이름만 들으면 안전을 위한 조항 같지만, 실상은 정부가 합법적으로 암호화된 메시지를 뜯어볼 수 있는 '디지털 쇠지렛대'를 쥐어주는 법안입니다. 페이스북 메신저, 시그널(Signal), 아이메시지(iMessage) 등 종단간 암호화(E2EE, End-to-End Encryption)를 제공하는 모든 서비스가 타깃입니다. 영국 상원의 Lord Hanson은 Ofcom이 보고서를 완료하는 즉시, 늦어도 2026년 4월까지는 이 권한을 발동할 것이라고 못 박았습니다.
기술적으로 이것이 왜 재앙인지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방식은 '클라이언트 사이드 스캐닝(Client-Side Scanning, CSS)'입니다. 기존의 도청 방식이 서버나 네트워크 단에서 패킷을 가로채는 것이었다면, CSS는 데이터가 암호화되기 직전, 즉 사용자의 스마트폰이나 PC에서 메시지를 스캔합니다.
쉽게 말해, 우리가 봉투에 편지를 넣어 밀봉(암호화)하기 전에, 정부가 심어놓은 감시 요원이 편지 내용을 미리 읽고 검열하겠다는 뜻입니다. Baroness Berger 같은 정치인들은 이를 "업로드 방지 기술(upload prevention technology)"이라고 부르며 유해 콘텐츠 차단에 효과적일 것이라 주장합니다. 하지만 보안 엔지니어 관점에서 이는 명백한 '백도어(Backdoor)'입니다.

이 방식은 세 가지 치명적인 문제를 야기합니다.
- 첫째, 종단간 암호화의 무력화입니다. E2EE의 대전제는 "송신자와 수신자 외에는 그 누구도, 심지어 서비스 제공자조차 내용을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 단에서 스캔이 이루어진다면, 그 시점에서 기밀성은 깨집니다. 당신이 아무리 강력한 알고리즘으로 데이터를 잠가도, 자물쇠를 채우기 전에 누군가 이미 내용을 복사해 갔다면 그 암호화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둘째, 보안 취약점의 폭발적 증가입니다. 모든 사용자의 기기에 '검열용 스캐닝 모듈'을 심어야 합니다. 해커들에게 이보다 좋은 먹잇감은 없습니다. 만약 공격자가 이 스캐닝 모듈의 제어권을 탈취한다면, 그들은 전 국민의 스마트폰을 합법적인 좀비 네트워크로 만들 수 있습니다. 정부만 이용할 수 있는 백도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문이 만들어지면, 그 열쇠를 찾는 것은 시간문제일 뿐입니다.
- 셋째, 오용 가능성입니다. 처음에는 아동 학대 이미지(CSAM)를 잡겠다고 시작할 겁니다. 누구도 반대하기 힘든 명분이니까요. 하지만 인프라가 한 번 깔리면, 필터링 대상은 금세 확장됩니다. 테러 관련 밈, 혐오 표현, 가짜 뉴스, 그리고 종국에는 정부에 비판적인 농담까지 스캔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 중국의 검열 시스템이 정확히 이런 방식으로 진화했습니다. 이는 기술적인 미끄러운 비탈길(Slippery Slope)입니다.
저는 넷플릭스에서 수많은 장애 상황을 겪으며 RCA(근본 원인 분석)를 해왔습니다. 시스템 장애는 대부분 복잡도(Complexity)에서 옵니다. 영국 정부의 요구는 전 세계 모든 메신저 앱에 불필요하고 위험한 복잡도를 강제로 주입하는 행위입니다. 스캐닝 알고리즘이 완벽할까요? 절대 아닙니다. 오탐(False Positive)으로 인해 억울하게 계정이 정지되거나 수사 대상이 되는 사용자가 발생할 것이고, 그에 따른 CS 비용과 법적 리스크는 고스란히 기업이 떠안아야 합니다.
시그널(Signal)이나 왓츠앱(WhatsApp) 같은 기업들이 "영국 시장 철수"를 불사하겠다고 반발하는 건 단순한 엄살이 아닙니다. 이 요구를 수용하는 순간, 그들이 전 세계 사용자에게 약속한 보안 모델이 붕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글로벌 서비스를 개발하는 엔지니어라면, 이 흐름을 예의주시해야 합니다. 만약 이 법안이 강행된다면, 여러분은 끔찍한 선택을 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영국 사용자만을 위한 별도의 '검열용 클라이언트'를 빌드하고 배포 파이프라인을 분리해야 할 수도 있습니다. 코드베이스가 파편화되고, 배포 복잡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겁니다. 새벽 3시에 PagerDuty 알람이 울려서 깼는데, 그 원인이 영국 정부의 스캐닝 모듈 오작동 때문이라면 얼마나 허탈하겠습니까?
2026년 4월은 멀지 않았습니다. 엔터프라이즈 기업의 로드맵 상으로는 바로 내일이나 다름없습니다. '프라이버시'는 이제 당연하게 주어지는 기본값이 아니라, 치열하게 싸워서 지켜내거나 비싼 값을 치러야 얻을 수 있는 사치재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기술은 가치 중립적이지만, 기술을 다루는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만드는 소프트웨어가 사용자를 보호하는 방패가 될지, 아니면 사용자를 감시하는 창이 될지 결정되는 시점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단순히 코드를 짜는 것을 넘어, 내가 만든 코드가 어떤 맥락에서 실행되는지 냉철하게 감시하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 손으로 디지털 파놉티콘을 완성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