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디자이너로서 가장 경계해야 할 순간이 언제인지 아십니까?
바로 화려한 비주얼에 매료되어 본질적인 문제를 놓칠 때입니다.
최근 BBC의 아티클을 읽으며 이와 똑같은 현상을 문학 작품에서 발견했습니다.
바로 F. 스콧 피츠제럴드의 걸작, 『위대한 개츠비』입니다.
우리는 흔히 '개츠비' 하면 무엇을 떠올리나요?
샴페인 타워, 화려한 플래퍼 드레스, 끝없이 이어지는 파티, 그리고 낭만적인 사랑.
소위 '개츠비적(Gatsbyesque)'이라는 단어는 호화로움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심지어 '개츠비 샌드위치'나 '개츠비 호텔' 같은 상품이 팔리기도 하죠.
하지만 작가 피츠제럴드는 정작 출간 직후 친구에게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모든 평론 중, 가장 열렬한 것조차, 그 책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사실 제이 개츠비는 로맨틱한 억만장자가 아닙니다.
그는 불법 주류 밀매업자(Bootlegger)이자, 범죄 조직과 깊숙이 연루된 인물입니다.
지나친 쇼맨십으로 자신을 포장한, 어쩌면 망상에 가까운 스토커이기도 하죠.
그의 화려한 파티는 '기술적 부채(Technical Debt)'와 같습니다.
겉보기에 화려한 UI 뒤엔,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엉망진창인 백엔드 로직이 돌아가고 있었던 셈입니다.

왜 우리는 이토록 텍스트를 오독해 왔을까요?
BBC는 그 원인을 미디어와 마케팅에서 찾습니다.
1925년 출간 당시, 이 책은 상업적으로 실패했습니다.
평론가들은 이 작품을 그저 그런 '범죄 소설의 실패작'으로 치부했죠.
재고가 쌓여 창고에서 먼지만 먹던 이 책이 빛을 본 건 2차 세계대전 때였습니다.
미군에게 배포된 15만 부의 '진중문고' 에디션이 새로운 독자층을 만들어냈습니다.
이후 할리우드가 개입합니다.
로버트 레드퍼드, 그리고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주연의 영화들이 나오면서 '비주얼'이 '내러티브'를 압도해버렸습니다.
우리는 영화 속 화려한 미장센에 취해, 개츠비가 결국 비참하게 살해당하고 장례식엔 아무도 오지 않았다는 결말을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프로덕트 씬에서 자주 목격되는 현상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성공한 서비스의 겉모습(UI, 마이크로 인터랙션)만을 벤치마킹합니다.
그 서비스가 그 형태를 갖추기 위해 겪었던 수많은 A/B 테스트와 실패의 데이터는 보지 못합니다.
마치 개츠비의 파티 장면만 보고 "이게 아메리칸 드림이지"라고 착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사실 그 파티의 자금은 불법과 불안으로 조달되었는데 말이죠.
2021년 저작권이 만료되면서 '개츠비 산업'은 더욱 폭발했습니다.
이제는 개츠비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의 프리퀄을 다룬 소설 『Nick』까지 등장했습니다.
이 소설의 작가 마이클 패리스 스미스는 이렇게 말합니다.
"개츠비를 의미 있게 만드는 건 샴페인이 아니라, 모든 것이 언제든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이 문장은 시니어 디자이너로서 제 뼈를 때리는 통찰이었습니다.
우리가 설계하는 제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용자는 화려한 인터페이스(샴페인) 때문에 우리 서비스에 남지 않습니다.
그들이 진짜 느끼는 감정은 내 데이터가 안전한지, 이 서비스가 내일도 존재할지에 대한 신뢰의 문제입니다.
개츠비의 비극은 그가 구축한 화려한 세계가 '유저(데이지)'의 실제 니즈와는 동떨어진 허상이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는 데이지를 사랑한 게 아니라, 자신이 투영한 이상향을 사랑했을 뿐입니다.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사고방식이죠.
결국 PMF(Product-Market Fit)를 찾지 못한 프로덕트의 말로는 비참합니다.
개츠비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개츠비의 오해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요?
겉으로 보이는 트렌드나 'Gatsbyesque'한 화려함에 속지 않는 눈을 길러야 합니다.
레거시 코드가 얼마나 엉켜있는지, 비즈니스 모델이 얼마나 견고한지 파악해야 합니다.
화면을 예쁘게 그리는 건 주니어 시절의 목표로 충분합니다.
시니어라면 그 이면에 깔린 불안과 모순, 그리고 시스템의 한계를 읽어내야 합니다.
오늘 여러분이 작업한 피그마 파일은 어떤가요?
혹시 개츠비의 파티장처럼, 개발팀이 구현할 수 없는 화려함으로만 채워져 있지는 않습니까?
그 아래 흐르는 논리가 '범죄' 수준으로 헐겁지는 않은지 다시 한번 점검해보시기 바랍니다.
진짜 위대한 디자인은 비극으로 끝나지 않아야 하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