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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리콘에서 들려오는 'Dudududu' 소리: 전설적인 신디사이저 칩을 해킹하는 법

실리콘에서 들려오는 'Dudududu' 소리: 전설적인 신디사이저 칩을 해킹하는 법

김현수·2026년 1월 4일·2

다루드의 'Sandstorm'을 탄생시킨 롤랜드 JP-8000 신디사이저 칩을 현미경과 퍼징으로 리버스 엔지니어링하여 '비트 퍼펙트' 에뮬레이션을 구현해낸 놀라운 과정을 소개합니다.

개발자 여러분, 혹시 다루드(Darude)의 곡 'Sandstorm'을 기억하시나요? 제목은 낯설어도 "두두두두" 하는 그 강렬한 전자음 도입부를 들으면 누구나 무릎을 탁 치실 겁니다. 2000년대 초반 테크노 음악을 상징하는 그 소리는 롤랜드(Roland)사의 JP-8000이라는 신디사이저에서 만들어졌습니다. 특히 '슈퍼쏘우(SuperSaw)'라고 불리는 독특한 파형이 핵심이었죠. 그런데 최근 이 소리의 원천을 파헤치기 위해, 말 그대로 칩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고 해킹해낸 엔지니어들의 이야기가 공개되었습니다. 오늘은 이 집요하고도 놀라운 리버스 엔지니어링 과정을 통해 우리가 마주하는 '레거시'와 '블랙박스'를 대하는 자세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 합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오픈 소스 라이브러리나 잘 문서화된 API와 달리, 1995년에 생산된 JP-8000의 핵심 DSP 칩(도시바 TC170C140)은 완벽한 미지의 영역이었습니다. 제조사가 만든 커스텀 칩이었기에 데이터 시트도 없고, 내부 동작을 설명해 줄 문서도 전무했죠. 마치 소스 코드는커녕 주석 하나 없는, 수십 년 된 바이너리 덩어리를 마주한 것과 같습니다. 보통 이런 경우 하드웨어 동작을 흉내 내는 근사치를 구현하곤 하지만, 이 프로젝트 팀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비트 퍼펙트(Bit-perfect)', 즉 오리지널 하드웨어와 수학적으로 완전히 동일한 소리를 내는 에뮬레이터를 목표로 삼았습니다.

이들이 택한 방법은 무모하리만큼 정공법이었습니다. 우선 칩의 뚜껑을 따고 현미경으로 실리콘 다이(Die) 사진을 찍었습니다. 하지만 1995년의 기술이라 해도 인간의 눈으로 회로를 일일이 분석하기엔 너무 복잡했기에, 여기서 첫 번째 기지를 발휘합니다. 컴퓨터 비전 기술을 도입해 칩 내부의 표준 셀(Standard Cell)을 자동으로 분류하고 회로도를 추출해 낸 것이죠. 소프트웨어 개발로 치면, 컴파일된 기계어를 디컴파일러에 넣어 대략적인 구조를 파악하는 과정과 비슷합니다. 하지만 하드웨어는 사진만으로 모든 동작을 알 수 없습니다. 숨겨진 로직이 있으니까요.

그래서 두 번째 단계로 '적극적인 개입'을 시도합니다. 아두이노(Arduino)를 이용해 죽어있는 칩에 전기를 흘려보내고, 임의의 명령어를 마구잡이로 던져보는 퍼징(Fuzzing) 기법을 사용했습니다. 문서화되지 않은 명령어 세트(Opcode)를 찾기 위해, 칩이 어떻게 반응하는지 통계를 내고 분석한 것입니다. 이 과정은 우리가 원인 모를 버그를 잡기 위해 로그를 심고, 예상치 못한 값을 입력해 보며 시스템의 반응을 살피는 과정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숨겨진 명령어들을 찾아냈고, 이를 기반으로 JIT(Just-In-Time) 컴파일러를 구현하여 최신 CPU 위에서 20년 전의 DSP 칩을 실시간으로 완벽하게 구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 이야기를 보며 저는 우리가 현업에서 마주하는 '레거시 시스템'을 떠올렸습니다. 문서도 없고, 만든 사람은 퇴사했고, 건드리면 어디가 터질지 모르는 공포스러운 코드들 말입니다. 하지만 이 엔지니어들이 보여준 것은, 아무리 복잡하고 불투명해 보이는 블랙박스라도 결국은 논리의 집합체라는 사실입니다. 현미경으로 물리적인 실체를 확인하고, 도구를 만들어 자동화하고, 끈질기게 테스트 케이스를 주입하면 결국 그 내부는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막막한 레거시 코드를 마주하고 계신가요? 혹은 도저히 원인을 알 수 없는 버그 때문에 밤을 새우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이 'Sandstorm' 해킹 프로젝트를 기억해 주십시오. 30년 된 실리콘 칩의 비밀도 풀리는데, 우리가 짠 코드라고 분석 못 할 리 없습니다. 중요한 건 두려움을 거두고, 적절한 도구를 찾아 집요하게 파고드는 엔지니어링 마인드일 것입니다. 오늘 커피 한 잔과 함께, 여러분의 모니터 속 난제를 다시 한번 들여다보는 건 어떨까요.

김현수
김현수10년 차 시니어 개발자

복잡한 기술을 누구나 이해하기 쉽게 풀어내는 것을 즐깁니다. 10년의 개발 여정에서 얻은 인사이트와 시행착오를 솔직하게 공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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