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 생활을 10년 넘게 하다 보면, 동료들로부터 혹은 매니저로부터 묘한 평가를 듣는 순간이 옵니다. "김 선배는 코드 짤 때 보면 너무 결벽증 같아요"라거나, "그냥 넘어갈 수도 있는 부분인데 왜 그렇게 집착하세요?" 같은 이야기들 말입니다. 저 또한 주니어 시절, 한 매니저로부터 'Purist(순수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은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그 말이 융통성 없다는 핀잔처럼 들려 속이 상하기도 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엔지니어로서 들을 수 있는 최고의 칭찬이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사회성이 부족하다'거나 '너무 예민하다'고 치부해버리는 소위 신경다양성(Neurodivergent)적 특성들이, 사실은 견고하고 확장 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핵심 재료가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커피 한 잔 내려놓고, 우리의 그 '유난스러움'이 어떻게 소프트웨어 생태계를 구원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우선 우리가 시스템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해 이야기해 봅시다. 보통의 기획자나 경영진은 '탑다운(Top-down)' 방식을 선호합니다. 큰 그림을 먼저 그리고 가설을 세운 뒤 데이터를 맞추죠. 하지만 훌륭한 엔지니어, 특히 조금 더 예민한 감각을 가진 분들은 정반대인 '바텀업(Bottom-up)' 사고를 합니다. 아주 작은 데이터 조각이나 이상 징후를 먼저 포착하고, 그것을 통해 전체 시스템의 결함을 찾아냅니다. 제가 겪었던 아찔한 배포 날이 기억납니다.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 클라이언트에게 제품을 넘기기 직전이었죠. 모두가 지쳐서 "이 정도면 됐다"고 생각하며 배포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평소 말수가 적고 수줍음 많던 후배 개발자가 다급하게 제 손을 막았습니다. "잠깐만요, 버튼 색깔이 이상해요." 남들이 보기엔 모니터 색감 차이 정도로 넘길 법한 미세한 채도 차이였지만, 그는 그것을 견딜 수 없어 했습니다. 확인 결과, 우리가 테스트하던 환경이 최신 버전이 아닌 구버전이었습니다. 만약 그대로 배포했다면 구버전에서는 보이지 않던 심각한 버그들이 실제 운영 환경을 덮쳤을 겁니다. 그 후배의 '유난스러운' 관찰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클라이언트와의 신뢰를 완전히 잃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남들이 놓치는 디테일에 집착하는 성향은 단순한 고집이 아니라, 시스템의 안정성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가 됩니다.
다음으로 '몰입'에 대한 이야기를 안 할 수 없습니다. 요즘 같은 세상은 산만함의 경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슬랙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리고, 오픈 오피스에서는 옆 사람의 잡담이 들려옵니다. 하지만 뛰어난 개발자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무서울 정도의 '초집중(Hyperfocus)' 상태를 갈망합니다. 때로는 이것이 주변 사람들에게는 사회적 단절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엘리트 엔지니어링 문화란 바로 이 집착에 가까운 집중력을 보호해 주는 데서 온다고 믿습니다. 제가 방문했던 한 해외의 개발 조직은 마치 수도원 같았습니다. 조명은 은은하고, 모든 대화는 방음 부스에서만 이루어졌으며, 책상은 서로 마주 보지 않게 배치되어 있었습니다. 그곳의 엔지니어들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자신의 사고 체계 안으로 깊숙이 침잠해 들어갔습니다. 그 결과물은 놀라울 정도로 정교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시끄러운 사무실 소음이나 잦은 회의 때문에 코딩의 맥이 끊겨 고통스럽다면, 그것은 여러분의 사회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여러분의 뇌가 '딥 워크(Deep Work)'를 원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그런 환경을 요구하는 것은 까탈스러운 것이 아니라 프로페셔널한 태도입니다.
마지막으로, '반복 작업에 대한 참을성 없음'은 개발자에게 축복과도 같습니다. 누군가는 엑셀 데이터를 다른 시스템으로 옮기는 단순 반복 작업을 묵묵히 수행하는 것을 성실함이라 부릅니다. 하지만 어떤 엔지니어들은 이런 비효율을 마주하면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낍니다. "내가 고작 이런 거 하려고 코딩 배웠나?" 하는 자괴감이죠. 흥미로운 점은, 이 '참을성 없음'이 자동화 본능(Automation Instinct)을 깨운다는 사실입니다. 일반적인 직원들이 몇 달 동안 수동으로 처리할 일을, 이들은 3일 밤을 새워 스크립트를 짜서 자동화해버립니다. 당장은 시간이 더 걸리는 것처럼 보여도, 장기적으로는 엄청난 효율성 배당(Efficiency Dividend)을 가져옵니다. 회사 입장에서 가장 필요한 인재는 시키는 대로 반복 작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반복 작업이 왜 필요한지 의문을 품고 기계에게 일을 넘겨버리는 사람입니다. 겉보기엔 게을러 보이거나 불만이 많아 보일 수 있지만, 사실 그들은 자신의 인지 자원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쓰기 위해 필사적으로 싸우고 있는 중입니다.
안타깝게도 많은 기업 환경은 여전히 '눈에 보이는 성실함'을 강조합니다. 아침 일찍 출근해서 늦게까지 자리를 지키는 것, 시끌벅적한 회의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것을 리더십이라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진정한 엔지니어링의 성과는 화려한 말발이나 엉덩이 싸움에서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요. 오히려 남들이 보지 못하는 1픽셀의 차이를 잡아내고, 반복되는 비효율에 화를 내며, 자신만의 동굴 속에서 완벽한 로직을 설계해 내는 그 예민함 속에서 혁신은 탄생합니다. 혹시 지금 자신의 성향이 조직과 맞지 않아 고민하고 계신가요? 너무 깐깐하게 구는 것 같아 스스로를 검열하고 계신가요?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여러분의 그 까다로움이야말로 우리 시스템이 무너지지 않도록 지탱하는 가장 강력한 기둥이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