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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다고 무조건 읽기 쉬운 건 아닙니다: 본질은 '길이'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짧다고 무조건 읽기 쉬운 건 아닙니다: 본질은 '길이'가 아니라 '구조'입니다

이루아·2026년 1월 5일·3

글이 짧다고 무조건 읽기 쉬운 것은 아닙니다. 진정한 가독성은 물리적인 길이가 아니라 명확한 논리적 구조와 평이한 스타일에서 나옵니다.

"최대한 짧게 줄여주세요."

프로덕트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기획자나 UX 라이터에게 가장 많이 했던 요청입니다.

화면은 좁고, 사용자의 인내심은 바닥이니까요.

우리는 흔히 '짧은 글 = 좋은 글'이라는 강박을 가지고 있습니다.

헤밍웨이처럼 짧고 간결하게 쓰는 것이 미덕이라고 배웠죠.

그런데 최근 읽은 흥미로운 아티클 하나가 제 뒤통수를 쳤습니다.

영어 문장의 역사를 분석해보니, 우리가 알던 상식과는 조금 다른 결론이 나왔거든요.

현대 영어가 과거보다 읽기 쉬워진 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 이유가 단순히 '문장이 짧아져서'는 아니라는 겁니다.

많은 분들이 문장의 길이를 줄이는 데 집착합니다.

저 역시 주니어 시절엔 그랬습니다.

설명이 길어지면 무조건 잘라내고, 버튼명을 두 글자로 줄이려고 애썼죠.

하지만 글자 수를 줄인다고 사용자가 내용을 더 잘 이해할까요?

오히려 맥락이 잘려나가 더 혼란스러워지는 경우를 수없이 목격했습니다.

이 아티클은 중요한 통찰을 던집니다.

읽기 쉬움(Readability)의 핵심은 '길이(Length)'가 아니라 '구조(Syntax)'와 '평이한 스타일(Plain style)'에 있다고요.

16~17세기를 거치며 영어는 거대한 전환을 맞이합니다.

상업적 글쓰기가 늘어나고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문장은 더 논리적으로 변했습니다.

핵심은 '주어-동사-목적어(S-V-O)'의 명확한 구조입니다.

예를 들어볼까요.

"Man dog walk." (남자 개 산책)

단어는 세 개뿐이고 매우 짧습니다.

하지만 이건 문장이 아닙니다.

오히려 뇌가 정보를 처리하는 데 버퍼링이 걸리죠.

반면,

"The man walked the dog." (남자가 개를 산책시켰다.)

문장은 더 길어졌지만, 누가 무엇을 했는지 인과관계가 명확합니다.

이게 바로 '통사적 구조(Syntactic structure)'의 힘입니다.

우리가 디자인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잡한 문장을 단순하게 만든답시고 억지로 쪼개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티클에서 든 예시를 보겠습니다.

"Alan Garber 박사는 하버드 총장이다. 그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저항한다. 연방 정부는 하버드의 자금을 끊으려 한다. 그것은 수십억 달러의 손실이다."

짧게 끊어 쳤지만, 뚝뚝 끊기는 느낌이 듭니다.

오히려 인과관계가 헐거워져서 독자가 머릿속으로 내용을 다시 조립해야 합니다.

반면, 종속절을 활용해 문장을 하나로 묶으면 '논리적 흐름'이 생깁니다.

"연방 정부가 하버드의 자금을 끊으려 하자, 하버드 총장인 Alan Garber 박사는 이에 맞서 싸우고 있다."

문장은 길어졌지만 이해는 훨씬 빠릅니다.

이것이 바로 논리적 문법(Logical Syntax)의 역할입니다.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과학 논문들은 문장 길이가 짧아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읽기 쉬워졌을까요?

천만에요.

문장은 짧지만, 그 안에 복잡한 명사구(Complex noun phrases)와 전문 용어를 꽉꽉 채워 넣었기 때문입니다.

짧은 문장이라도 불필요한 정보나 어려운 단어가 가득 차면, 그건 '나쁜 UX'입니다.

결국 중요한 건 물리적인 길이가 아닙니다.

사용자가 받아들여야 하는 '정보의 밀도''논리적 구조'입니다.

저는 이 원칙을 UI 설계에도 그대로 적용합니다.

단순히 요소를 덜어내고 여백을 많이 준다고 해서 '직관적인 디자인'이 되는 건 아닙니다.

사용자가 다음 행동을 예측할 수 있도록 논리적인 흐름(Syntax)을 만들어줘야 합니다.

때로는 친절한 설명 한 줄이, 퉁명스러운 단어 두 개보다 훨씬 더 나은 경험을 제공합니다.

우리는 '짧음'이라는 지표가 아니라, '명확함'이라는 가치를 쫓아야 합니다.

디자인이든 글쓰기든, 본질은 같습니다.

화려한 미사여구를 걷어내는 '평이한 스타일'.

그리고 사용자가 길을 잃지 않게 잡아주는 '논리적 구조'.

이 두 가지만 기억해도, 우리의 제품은 훨씬 더 읽기 쉬워질 겁니다.

오늘 작성하고 있는 기획서나 문구가 있다면 다시 한번 살펴보세요.

그저 짧게 자르는 데만 몰두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길이를 줄이는 것보다, 논리를 세우는 것이 먼저입니다.

이루아
이루아Senior Product Designer

심미성보다는 논리를, 감보다는 데이터를 신봉합니다. '예쁘게 해주세요'라는 말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디자인이 비즈니스 지표를 어떻게 견인하는지 증명하는 데 집착합니다. 화려한 포트폴리오 뒤에 숨겨진 치열한 커뮤니케이션과 정치의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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