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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차 개발자가 본 '퀀텀 터널'이라는 묘한 장난감

10년 차 개발자가 본 '퀀텀 터널'이라는 묘한 장난감

김현수·2026년 1월 5일·3

10년 차 개발자가 번아웃의 순간 발견한 '퀀텀 터널' 시뮬레이터. 기술적 화려함보다 중요한 몰입의 미학과 개발의 원초적인 즐거움을 다시 발견한 기록입니다.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개발자로 10년 넘게 일하다 보면 가끔 이런 순간이 옵니다.

"아, 코딩하기 싫다."

네, 솔직히 말할게요.

저라고 매일 모니터 속 검은 화면이 반갑겠습니까.

특히 복잡한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MSA) 설계나, 원인 모를 메모리 누수 잡느라 3일 밤을 샜을 때는요. 키보드고 뭐고 다 집어던지고 그냥 멍하니 있고 싶어지죠.

오늘이 딱 그런 날이었습니다. 점심 먹고 들어와서 커피 한 모금 마시는데, 해커뉴스(Hacker News)에 재미있는 게 하나 올라왔더라고요. 이름부터 거창합니다.

Quantum Tunnel(퀀텀 터널).

양자 터널이라니, 무슨 물리학 논문인가 싶어서 클릭해 봤는데요. 이게 웬걸. 논문이 아니라 웹 브라우저에서 돌아가는 작은 시뮬레이터였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주 심플하지만 묘하게 중독성 있는 '탐험' 도구였죠.

처음 접속하면 당황스럽습니다. 화려한 UI도 없고, 친절한 튜토리얼도 없거든요. 그냥 버전 정보 QUANTUM_TUNNEL v7.2.1 덩그러니 있고, 'Go to Expedition(탐험으로 이동)' 버튼 하나가 반짝입니다.

저도 모르게 홀린 듯 버튼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저는 10년 차 시니어 개발자라는 체면도 잊고 화면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기하학적 터널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이게 기술적으로 엄청난 신기술이냐고요? 음, 냉정하게 말하면 그렇지는 않습니다. WebGL이나 Three.js 같은 라이브러리를 다뤄본 분들이라면 "아, 이거 쉐이더(Shader) 좀 만지면 만들 수 있겠는데?" 하실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제가 이 작은 프로젝트에서 느낀 건 '기술적 화려함'이 아닙니다. 바로 '몰입의 미학'이었어요.

이 퀀텀 터널에는 몇 가지 모드가 있습니다. Manual Mode(수동 모드)HUD Mode(헤드업 디스플레이 모드). 그리고 Calibration(보정) 기능까지. 마치 SF 영화 속 우주선 조종석에 앉은 기분을 내게 해주죠.

제가 특히 인상 깊었던 건 HUD 모드였습니다. 화면 가장자리에 각종 수치와 그래프가 실시간으로 움직이는데, 사실 그 수치가 정확히 뭘 의미하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어요. 그저 내가 이 복잡한 디지털 우주를 항해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거든요.

우리가 개발할 때 자주 놓치는 게 바로 이 부분입니다. 기능 명세서(Spec)에 적힌 대로 동작하는 것. 버그 없이 완벽한 로직을 짜는 것.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사용자가 느낄 '감정'을 설계하는 건 또 다른 차원의 문제죠.

이 프로젝트를 만든 개발자는 아마 알고 있었을 겁니다. 사람들이 진짜 원하는 건 완벽한 물리 엔진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현실을 잊고 어딘가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경험이라는 걸요.

이 '퀀텀 터널'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신입 시절 제 모습이 떠오르더군요. 화면에 "Hello World" 하나 띄워놓고 가슴 뛰었던 그 시절요. 그때는 검은 화면에 흰 글씨 한 줄 나오는 게 마법처럼 느껴졌거든요.

지금은 너무 익숙해져서 무감각해진 그 마법을, 이 작은 웹사이트가 다시 일깨워준 기분입니다. 이게 뭐라고, 보고 있으니 마음이 차분해집니다. 복잡하게 꼬인 스파게티 코드 때문에 머리 아프던 게 조금은 풀리는 것 같기도 하고요.

가끔은 이렇게 목적 없는 코드가 주는 위로가 있습니다. 비즈니스 로직도, KPI 달성도 필요 없는 순수한 유희로서의 코드 말이죠.

여러분도 오늘 머리가 복잡하다면, 잠시 하던 일을 멈추고 이 '양자 터널'을 한번 여행해 보세요. 화려한 3D 게임도 아니고, 세상을 바꿀 혁신적인 서비스도 아니지만, 개발자라는 직업이 줄 수 있는 가장 원초적인 즐거움을 다시 발견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도 이제 그만 멍 때리고, 다시 현실의 코드를 짜러 가야겠네요. 그래도 아까보단, 키보드 두드리는 손가락이 조금 가벼워진 것 같습니다. 오늘도 버그 없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김현수
김현수10년 차 시니어 개발자

SI의 척박한 땅에서 시작해 빅테크의 대규모 트래픽까지 경험한 생존형 개발자입니다. '화려한 기술'보다 '퇴근을 보장하는 안정성'을 신봉하며, 주니어들의 삽질을 방지하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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