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디자인을 고집하다 6개월을 날리고, 팀 해체 통보를 받은 날의 기록

완벽한 디자인을 고집하다 6개월을 날리고, 팀 해체 통보를 받은 날의 기록

이루아·2026년 1월 8일·4

완벽한 디자인에 집착하다 6개월의 시간을 낭비하고 팀 해체까지 겪었던 뼈저린 실패 기록과 그를 통해 깨달은 진정한 비즈니스 임팩트에 대한 회고입니다.

판교의 밤은 언제나 밝습니다. 하지만 그 불빛이 모두 희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3년 전, 저는 사무실 구석 자리에 앉아 멍하니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Zeplin에 업로드된 수백 장의 스크린, 1px의 오차도 없는 완벽한 레이아웃, 개발팀과 밤새 논쟁하며 지켜낸 마이크로 인터랙션.

그 모든 것이 완벽했습니다. 단 하나, 지표만 빼고요.

6개월간 매달린 프로젝트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리텐션(Retention)은 요지부동이었고, 신규 유입된 유저들은 온보딩 과정에서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계속 되뇌었습니다. "아니야, 아직 유저들이 적응을 못한 거야. 다음 스프린트에 툴팁을 개선하면 나아질 거야."

그때의 저는 몰랐습니다. 제가 발목까지 차오른 수렁(Bog) 한가운데 서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오늘은 제가 겪었던 그 끈적하고 불쾌한 정체기, 그리고 그곳에서 탈출하기 위해 뼈저리게 깨달았던 것들을 이야기하려 합니다.

열심히 헛발질하기 (Gutterballing)

당시 저는 누구보다 바빴습니다. 하루 14시간씩 일했고, 주말에도 슬랙(Slack) 알림을 끄지 않았습니다. 동료들은 저에게 "책임감이 대단하다", "디테일이 살아있다"며 칭칭했습니다. 그 칭찬이 독이었습니다.

심리학자 애덤 마스트로이아니는 이를 '거터볼링(Gutterballing)'이라고 부릅니다. 볼링공을 던지는데, 폼은 완벽하고 힘도 넘치지만 방향이 미묘하게 틀어져 결국 도랑(Gutter)으로 빠지는 현상입니다.

저는 비즈니스 임팩트가 없는, 즉 유저가 전혀 원하지 않는 기능을 '장인 정신'으로 깎고 있었습니다. 예쁜 쓰레기를 만드는 데 열정을 쏟으면서, 그 과정에서 오는 육체적 피로감을 '성취감'으로 착각했습니다. "이렇게 고생했으니 결과도 좋을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는 지표 앞에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우리는 종종 칭찬받기 쉬운 일을 선택합니다. 이해관계자들을 만족시키고, 개발자와 둥글게 지내며, 갈등을 피하는 디자인을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수렁으로 더 깊이 들어가는 길입니다. 진짜 필요한 일은 대개 불편하고, 논쟁을 유발하며, 당장은 욕을 먹을 수도 있는 결정들이기 때문입니다.

문제를 쓰다듬기만 하는 사람들

프로젝트가 난항을 겪자 우리는 회의실에 모여 매일 '대책 회의'를 열었습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것은 대책 회의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감상'하고 있었습니다.

"이 이탈률 좀 보세요. 정말 심각하지 않나요?" "맞아요. 이 퍼널(Funnel)이 진짜 문제라니까요. 깊이가 엄청나요."

우리는 문제가 얼마나 거대하고 복잡한지 서로 확인하며 묘한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문제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밥값을 하고 있다고 착각한 것입니다. 이것을 '문제 어루만지기(Petting the Problem)'라고 합니다.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우리는 데이터를 쪼개고 또 쪼개며 분석 리포트만 양산했습니다. 정작 필요한 액션, 즉 가설을 세우고 과감하게 기능을 덜어내거나 피봇(Pivot)하는 결단은 미뤘습니다. 분석은 행동이 아닙니다. 그것은 그저 세련된 회피일 뿐입니다.

잭팟은 오지 않는다

저는 기다렸습니다. 개발 리소스가 충분해지는 시점을, 완벽한 A/B 테스트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순간을, 혹은 경쟁사가 실수해서 우리에게 기회가 오기를. 모든 조건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져서, 내가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도 상황이 반전되는 '잭팟'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스타트업 씬에서, 그리고 프로덕트의 세계에서 그런 잭팟은 절대 오지 않습니다.

가장 두려웠던 건 '드래곤'과 마주하는 것이었습니다. 레거시 시스템을 갈아엎자고 CTO에게 제안하는 것, 혹은 공들여 만든 기능을 과감히 삭제하자고 PO를 설득하는 것. 그 용기를 내는 순간이 너무나 공포스러웠기에, 저는 '점진적 개선'이라는 비겁한 방패 뒤에 숨어있었습니다.

결국 팀은 해체되었습니다. 저는 다른 프로젝트로 배속되었고, 6개월간의 작업물은 아카이브 폴더 속에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수렁에서 건져 올린 것

그 실패 이후 저는 일하는 방식을 완전히 바꿨습니다.

  • 첫째, '열심히'가 아니라 '제대로' 조준했는지 매일 아침 확인합니다. 지금 내가 픽셀을 옮기는 이 작업이 핵심 지표(North Star Metric)를 움직이는 데 기여하는가? 아니면 그저 자기만족을 위한 거터볼링인가?
  • 둘째, 문제가 보이면 쓰다듬지 않고 바로 칼을 댑니다. 회의실에서 탄식할 시간에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유저에게 던져보고 깨지는 쪽을 택합니다.
  • 셋째, 고통스러운 용기를 선택합니다. 지금 느끼는 두려움은 수렁을 빠져나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편안하고 안전한 느낌이 든다면, 그것은 평범함의 함정(Trap of Mediocrity)에 빠져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뜻일지도 모릅니다.

지금 당신의 모니터를 한번 바라보십시오. 당신은 비즈니스의 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예쁜 화면을 그리며 칭찬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수렁은 아늑합니다. 밖으로 나가는 길은 춥고 두렵습니다. 하지만 그곳에 서서 천천히 가라앉는 것보다는, 진흙투성이가 되더라도 밖으로 기어 나오는 편이 낫습니다.

당신의 활성화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과 리소스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루아
이루아Senior Product Designer

심미성보다는 논리를, 감보다는 데이터를 신봉합니다. '예쁘게 해주세요'라는 말에 알러지 반응을 일으키며, 디자인이 비즈니스 지표를 어떻게 견인하는지 증명하는 데 집착합니다. 화려한 포트폴리오 뒤에 숨겨진 치열한 커뮤니케이션과 정치의 기술을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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