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발자로 일하다 보면 '최초'라는 타이틀에 집착하게 되는 순간이 종종 옵니다. 누군가는 최초의 프레임워크를 만들고 싶어 하고, 누군가는 세상에 없던 서비스를 내놓고 싶어 하죠. 게임 업계의 역사를 이야기할 때 많은 분이 1972년에 나온 아타리의 '퐁(Pong)'을 시초로 꼽곤 합니다. 저도 신입 시절에는 당연히 그런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역사를 깊이 파고들다 보면, 우리가 알고 있는 상식보다 훨씬 더 거칠고 투박하지만, 본질에 가까운 '진짜 시초'를 마주하게 됩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 합니다.
시간을 퐁이 나오기 14년 전인 1958년으로 돌려봅시다. 장소는 실리콘밸리의 화려한 오피스가 아니라, 딱딱하고 엄숙한 분위기의 브룩헤이븐 국립연구소입니다. 이곳에 윌리엄 히긴보덤이라는 물리학자가 있었습니다. 이분의 이력이 참 독특합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해 원자폭탄의 전자 장치를 설계했던 인물이죠. 전쟁이 끝난 후에는 핵무기 반대 운동을 하기도 했던, 기술의 명과 암을 모두 목격한 베테랑 엔지니어였습니다.
당시 연구소에서는 매년 대중을 위한 전시회를 열었는데, 히긴보덤은 방문객들이 전시물을 보며 지루해하는 모습을 견딜 수 없었습니다. 정적인 사진이나 복잡한 수식이 적힌 패널은 사람들의 흥미를 끌지 못했죠. 그는 생각했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만지고 반응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면, 우리의 과학이 사회와 연결되어 있다는 걸 더 잘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UX(사용자 경험)라고 부르는 고민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는 즉시 행동에 옮겼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그래픽 처리를 위한 GPU는커녕 제대로 된 디스플레이 장치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리소스라고는 미사일이나 탄환의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아날로그 컴퓨터와, 전압의 파형을 보여주는 오실로스코프가 전부였습니다. 개발자 관점에서 보면, 웹 프론트엔드를 만들어야 하는데 가진 도구라고는 쉘 스크립트와 터미널 화면밖에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였죠.
하지만 훌륭한 엔지니어는 도구 탓을 하지 않습니다. 히긴보덤은 탄도 궤적을 계산하는 로직을 '공의 움직임'으로 치환했습니다. 중력 값과 바람 저항 값을 계산하던 아날로그 회로를 개조해 테니스 공이 네트를 넘어가는 물리 엔진으로 재탄생시킨 겁니다. 화면은 오실로스코프의 초록색 점과 선으로 구현했고, 사용자가 공의 각도를 조절하고 쳐낼 수 있도록 별도의 컨트롤러까지 제작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바로 'Tennis for Two'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대성공이었습니다. 지루해하던 관람객들은 이 조그만 오실로스코프 화면 앞에 줄을 섰습니다. 단순히 정보를 전달받는 수동적인 입장에서, 기계와 상호작용하는 능동적인 주체가 되는 경험에 매료된 것입니다. 탄도 계산용 컴퓨터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오락기로 변신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저는 우리가 다루는 '레거시'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오래된 기술이나 코드를 기술적 부채로만 치부하고 걷어내려 합니다. 하지만 히긴보덤은 전쟁을 위해 만들어진 무거운 기술(탄도 계산기)을 평화롭고 즐거운 목적(게임)으로 리팩토링했습니다. 기술 그 자체보다, 그 기술을 통해 사용자에게 어떤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에 집중했기 때문에 가능한 발상이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씨름하고 있는 그 복잡한 레거시 코드나, 혹은 제한적인 인프라 환경이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도구가 될지도 모릅니다. 1958년의 물리학자가 미사일 궤적 계산기에서 테니스 게임을 보았듯이, 우리도 주어진 환경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결국 엔지니어링의 본질은 최신 도구를 쓰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고 사람을 웃게 만드는 데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