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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쩡하던 개발용 PC가 윈도우 업데이트 한 번으로 벽돌이 되었습니다 (부검 리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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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아직도 '야생의 습관'을 다 버리지 못한 것 같습니다.
체계적인 대기업 시스템에 적응하려 애쓰고 있지만, 여전히 새로운 하드웨어나 실험적인 장난감이 나오면 눈이 돌아가거든요.
2024년 10월, 퀄컴(Qualcomm)의 Snapdragon Dev Kit을 손에 넣었을 때가 딱 그랬습니다.
Snapdragon X Elite ARM64 CPU, 32GB 램, 512GB SSD.
스펙만 봐도 가슴이 뛰었죠. 실제로 성능은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제 메인 장비인 Core i9 시스템보다 체감 속도가 빨랐으니까요.
1년 넘게 매일 사용했습니다.
이벤트 뷰어(Event Viewer)를 수시로 확인하는 제 강박적인 습관에도, 이 녀석은 단 한 번의 오류도 뱉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이 녀석이 죽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Microsoft의 보안 업데이트 하나가 이 기계를 완벽한 벽돌(Brick)로 만들었습니다.
오늘은 그 처절했던 3일간의 '부검 리포트'를 공유하려 합니다.
시작은 사소했습니다.
12월 초, Windows 11 보안 업데이트(KB5068861)가 설치에 실패했습니다.
보통 이런 일은 흔하잖아요?
저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습니다.
8년 차 짬바(?)가 있으니, 익숙한 명령어들을 쳤습니다.
sfc /scannow
dism /Online /Cleanup-Image /RestoreHealth
Microsoft Update Catalog에서 수동 설치까지 시도했죠.
하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구글링해 보니 저만 겪는 문제가 아니더군요.
"다음 업데이트에서 고쳐주겠지"라며 업데이트를 한 달간 꺼뒀습니다.
문제는 이번 주, 업데이트를 다시 켰을 때 터졌습니다.
재시작을 눌렀는데, 시스템이 롤백을 시도하다가 꼬여버린 겁니다.
네 번의 강제 재부팅 끝에 겨우 윈도우 진입에는 성공했지만, 상황은 처참했습니다.
Microsoft 계정 로그인이 불가능했고, 프로필은 초기화되었으며, Windows Terminal조차 실행되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이벤트 뷰어마저 열리지 않더군요.
여기서 멈췄어야 했는데, 저는 개발자의 본능대로 '재부팅'을 시도했습니다.
그게 마지막이었습니다.
시스템은 이제 무한 재부팅 루프에 빠지거나, 랜덤하게 전원이 꺼져버리기 시작했습니다.

하드웨어 문제일까 싶어 등줄기에 식은땀이 흘렀습니다.
부팅 중 Home 키를 연타해 BDS(Boot Device Selection) 메뉴로 들어갔습니다.
하지만 UEFI 메뉴조차 불안정했습니다.
커서가 멈추거나 옵션 선택이 안 되더군요.
키보드 문제인가 싶어 포트를 바꿔봤지만 똑같았습니다.
수십 번의 시도 끝에 겨우 메뉴를 조작할 수 있는 타이밍을 잡았습니다.
저는 최후의 수단인 '클린 설치'를 결심했습니다.
- Secure Boot 비활성화
- USB 우선 부팅 활성화
- 미리 받아둔 드라이버 패키지와 Windows 11 ARM ISO 준비
설치 화면까지 진입했을 때만 해도 희망이 보였습니다.
C 드라이브 파티션을 날리고 윈도우를 새로 깔았습니다.
설치가 완료되고 초기 설정 화면이 떴을 때, "살렸다!"라고 외칠 뻔했죠.
하지만 네트워크 드라이버를 잡으려고 USB를 선택하는 순간.
시스템이 툭 꺼졌습니다.
그 뒤로는 부팅 로고조차 넘기지 못합니다.
SSD를 떼서 다른 PC에 연결해 보니 멀쩡했습니다.
하드웨어 고장이 아니었습니다.
결론은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윈도우 업데이트가 펌웨어(Firmware)나 UEFI 구성 요소의 핵심 영역을 건드린 겁니다.
일반적인 노트북이라면 제조사(Dell, ASUS 등)에서 제공하는 리커버리 툴로 펌웨어를 덮어씌우면 됩니다.
하지만 이건 'Dev Kit'입니다.
가장 뼈아픈 사실은, 제가 이 기기를 받은 날 퀄컴이 "이 제품은 단종이며, 향후 지원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는 겁니다.
OEM 제조사가 없으니 복구 툴도 없고, 퀄컴의 공식 지원도 끊겼습니다.
문서화된 펌웨어 플래싱 방법도 없습니다.
단 한 번의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실패가, 하드웨어를 영구적으로 망가뜨린 겁니다.
이번 일을 겪으며 뼈저리게 느낀 게 있습니다.
스타트업 시절에는 "일단 돌아가면 장땡"이라며 레거시 장비나 실험적인 툴을 겁 없이 썼습니다.
하지만 시스템이 커지고 책임이 무거워질수록, '표준화'와 '지원(Support)'이 왜 중요한지 깨닫게 됩니다.
아무리 성능이 좋은 칩셋(Snapdragon X Elite)이라도, 그것을 받쳐주는 생태계와 안전장치가 없다면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서도 호기심에, 혹은 가성비 때문에 '지원 끊긴 개발자용 기기'를 실무에 쓰려는 분이 계신가요?
도시락 싸 들고 다니며 말리고 싶습니다.
하드웨어는 죄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 하드웨어를 살려낼 '소프트웨어적 심폐소생술' 도구가 없다면, 그건 언제든 비싼 벽돌이 될 수 있습니다.
저의 불쌍한 ARM 박스는 이제 제 책상 한구석에서 영원히 잠들었습니다.
부디 여러분의 장비는 무사하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