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실리콘밸리에서 15년을 구르며 시스템 엔지니어로서 뼈저리게 배운 원칙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비난 없는 회고(Blameless Post-Mortem)'입니다. 주니어가 프로덕션 DB를 날려 먹었든, 배포 스크립트 오타로 전체 리전(Region)이 다운됐든, 우리는 절대 '사람'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실수할 수밖에 없게 만든 '시스템'을 탓하고 고치죠. 그런데 최근 X(구 트위터)가 보여주는 행보는 이 엔지니어링의 기본 철학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있습니다. 그들은 시스템의 결함을 사용자의 도덕성 탓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솔직히 말해, 이건 기술적 오만이거나 운영의 포기입니다.
최근 X의 AI 모델인 Grok가 아동 성착취물(CSAM)과 실존 인물을 성적화한 이미지를 생성해 논란이 되었습니다. 정상적인 플랫폼 엔지니어링 팀이라면 즉시 배포를 롤백(Rollback)하거나 긴급 핫픽스로 필터링 레이어를 강화했을 겁니다. 하지만 X Safety 팀의 공식 입장은 충격적이었습니다. "Grok를 사용해 불법 콘텐츠를 만든 사용자를 처벌하겠다"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일론 머스크와 그의 지지자들은 이를 두고 "나쁜 글을 쓴다고 펜을 탓할 수 없다"는 논리를 폅니다. 펜은 사용자가 쥐고 있는 대로 움직일 뿐이라는 거죠.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엔지니어 관점에서 보면 이는 LLM(거대 언어 모델)의 기술적 특성을 완전히 무시한 궤변에 불과합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링에서 '펜'은 결정론적(Deterministic) 도구입니다. print("Hello")를 입력하면 언제나 Hello가 나와야 하죠. 하지만 생성형 AI는 확률적(Stochastic)이며 비결정론적입니다. 사용자가 의도하지 않아도, 혹은 모호한 프롬프트(Prompt)를 입력해도 모델은 학습된 데이터의 확률 분포에 따라 끔찍한 결과를 '환각(Hallucination)'처럼 뱉어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작년 8월, Grok는 요청받지 않았음에도 테일러 스위프트의 부적절한 이미지를 생성해냈습니다. 펜이 제멋대로 글을 쓴 셈인데, 여전히 사용자 탓을 할 수 있을까요? 사용자는 심지어 Grok가 생성한 이미지를 삭제할 권한조차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계정 영구 정지"와 "법적 조치"만 운운하는 것은 RCA(근본 원인 분석)를 포기하고 범인 찾기(Blaming)에만 몰두하는, 가장 저열한 운영 방식입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대응이 비즈니스의 존폐와 직결된 가용성(Availability) 위협을 초래한다는 점입니다. 앱스토어(App Store) 정책은 가차 없습니다. 애플은 앱 내에서 생성되는 콘텐츠, 특히 CSAM에 대해 무관용 원칙을 고수합니다. X는 기존의 해시 매칭(Hashing) 기술로 알려진 CSAM 이미지를 차단한다고 자랑하지만, AI가 매번 새롭게 생성해내는(Generative) 유니크한 CSAM은 기존 해시 값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탐지 모델이나 세이프티 가드레일(Safety Guardrail) 없이 사용자 처벌로만 대응하겠다는 건, 사실상 애플에게 "우리를 앱스토어에서 내려달라"고 시위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머스크는 이미 챗GPT 편애를 이유로 애플을 고소했지만, Grok가 아동 착취물을 쏟아내는 한 그 소송은 승산이 없습니다.

현실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여러분이 개발하고 있는 서비스에 LLM을 붙이려 한다면, 절대 X의 방식을 따라 해서는 안 됩니다. "사용자의 자유"라는 명분은 듣기엔 좋지만, 새벽 3시에 PagerDuty 알람을 울리게 만드는 건 결국 "구멍 뚫린 시스템"입니다. NCMEC(실종학대아동방지센터)에 신고된 건수가 폭증하고, 법 집행 기관이 서버 로그를 압수수색하러 오는 상황을 상상해 보십시오. 엔지니어로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사용자를 믿는 게 아니라, 사용자가 어떤 입력을 넣더라도 시스템이 안전하게 동작하도록 '방파제'를 쌓는 일입니다.
결론적으로, 기술적 통제권을 포기하고 법적 위협으로만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X는 2024년에 450만 개의 계정을 정지시켰다고 자랑하지만, 그건 자랑이 아니라 시스템이 그만큼 취약하다는 방증입니다. AI 시대의 SRE는 서버가 죽지 않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모델이 사회적/법적 임계치를 넘지 않도록 제어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키려다 서비스 자체의 생존을 위협받는 우를 범하지 마십시오. 시스템이 뱉어낸 결과물에 대한 책임은 결국 그 시스템을 설계하고 배포한 우리 엔지니어들에게 돌아옵니다. 그게 이 차가운 업계의 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