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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LM을 '채팅창'에만 가두는 개발자, 2년 뒤 당신의 책상은 사라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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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최근까지도 생성형 AI를 그저 '똑똑한 챗봇' 정도로만 치부했습니다. 회사에서 RAG(검색 증강 생성)를 도입해 사내 문서를 검색하는 프로젝트를 리딩하면서도, 제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하면 프롬프트를 잘 짜서 답변 정확도를 높일까?"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텍스트를 넣고, 텍스트를 받는 구조. 그게 제가 생각한 AI 서비스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최근 'Shadowlight'라는 프로젝트를 접하고 나서 등골이 서늘해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8년 차 개발자로서 쌓아온 제 경험이, 다가올 인터페이스의 변화 앞에서는 너무나 낡은 것이 될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Shadowlight는 마인크래프트 안에서 음성으로 AI NPC들과 대화하며 살인 사건을 해결하는 미스터리 게임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음성'과 '관계'입니다. 플레이어는 키보드를 두드리는 대신 마이크에 대고 말을 겁니다. 그러면 NPC는 그 말을 듣고(STT), 감정을 분석하고, 기억을 되살려 대답(TTS)합니다. 심지어 NPC마다 '신뢰도'라는 내부 상태 값이 있어서, 플레이어가 충분히 공감해주거나 신뢰를 쌓지 않으면 결정적인 단서를 주지 않고 거짓말을 하기도 합니다.
이 프로젝트를 보며 제가 느꼈던 충격은 단순히 "게임이 재미있겠다"는 차원이 아니었습니다. 백엔드 개발자의 시선에서 볼 때, 이것은 기존의 'Request-Response' 구조를 완전히 파괴하는 아키텍처였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동안 API 응답 속도(Latency)를 줄이기 위해 쿼리를 튜닝하고 캐시를 바르는 데에만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실시간 음성 데이터를 처리하면서 동시에 NPC의 '기분(State)'과 '기억(Context)'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해야 합니다. 텍스트 채팅이었다면 사용자가 엔터를 칠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만, 음성 인터페이스는 사용자의 침묵, 망설임, 어조까지 실시간으로 처리해야 하는 엄청난 복잡도를 가집니다.
과거 제가 스타트업에서 챗봇 서비스를 만들 때 저질렀던 실수가 떠올라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당시 저는 사용자의 이전 대화 맥락을 단순히 DB에 로그로만 쌓아두었습니다. 챗봇은 바로 직전의 질문은 기억했지만, 3분 전에 했던 감정적인 호소는 전혀 기억하지 못했죠. 결국 사용자는 "말이 안 통한다"며 이탈했습니다. Shadowlight는 이 문제를 'Companion App'과 웹소켓 통신을 통해 해결하려 했습니다. 별도의 웹 앱이 음성 처리와 AI 연산을 전담하고, 마인크래프트 서버는 게임 내 액션만 처리하는 이원화된 구조를 택한 것입니다. 이는 무거운 LLM 연산을 실시간 게임 루프에서 분리해내려는, 생존을 위한 치열한 고민의 결과일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텍스트'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야 합니다. 비단 게임뿐만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서비스는 키보드가 아닌 목소리, 제스처, 그리고 맥락을 통해 사용자와 상호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단순히 OpenAI API를 호출해서 JSON을 파싱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음성 데이터를 스트리밍으로 처리하는 파이프라인, 대화의 맥락을 벡터 DB에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불러오는 메모리 관리 전략, 그리고 AI가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게 만드는 에이전트(Agent) 아키텍처를 고민해야 할 때입니다.
Shadowlight를 만든 'Hero Journey Club'은 기술을 통해 고립된 사람들을 연결하고자 했다고 말합니다. 기술은 결국 사람을 향해야 하고, 사람과 가장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방식은 '대화'입니다. 우리가 만드는 시스템이 단순히 데이터를 입출력하는 기계가 아니라, 사용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티키타카'가 가능한 유기체로 진화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당장 여러분의 서비스에 음성 인터페이스가 붙는다면, 혹은 AI가 사용자의 감정 상태에 따라 다른 로직을 수행해야 한다면 어떻게 구현하시겠습니까? 막막하다면 지극히 정상입니다. 저 또한 그 막막함 속에서 다시 공부를 시작했으니까요. 텍스트 박스 안에 갇혀 있던 사고를 깨고 나오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머지않아 AI가 작성한 코드를 리뷰조차 할 수 없는, 그저 그런 관리자로 전락할지도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