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5년 1월, 킥오프 미팅 때 제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올해는 UI를 없애는 게 우리의 목표입니다. 사용자가 버튼을 누르게 하지 마세요. 에이전트(Agent)가 알아서 하게 만드세요." 당시 저는 OpenAI의 샘 알트만과 케빈 웨일이 던진 장밋빛 전망에 완전히 매료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확신에 차서 말했죠. 2025년은 AI가 단순한 챗봇을 넘어 '직장에 합류(join the workforce)'하는 해가 될 것이라고요.
저는 이 문장을 비즈니스 기회로 해석했습니다. 서류 작성이나 호텔 예약 같은 복잡한 태스크를 AI가 처리해 준다면, 우리 서비스의 복잡한 온보딩 프로세스를 획기적으로 단축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습니다. 개발팀 리드와 치열하게 논쟁하며 로드맵을 수정했고, 기존의 GUI 개선 프로젝트를 드랍시킨 뒤 'AI 에이전트 통합'을 최우선 순위로 밀어붙였습니다. 세일즈포스의 마크 베니오프가 말한 '디지털 노동 혁명'의 선두에 서고 싶다는 욕심, 솔직히 인정합니다. 그게 저의 가장 큰 오판이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우리는 아무것도 배포하지 못했습니다. 우리가 마주한 현실은 혁명이 아니라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테스트 환경에서 우리가 만든 에이전트는 부동산 웹사이트의 드롭다운 메뉴 하나에서 값을 선택하는 데 무려 14분을 소모했습니다. 사용자가 3초면 할 일을, 에이전트는 14분 동안 버벅대며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칼 뉴포트(Cal Newport)가 지적했듯, 우리는 코딩 영역에서 보여준 Claude Code나 Codex의 성공이 다른 모든 업무 영역으로 손쉽게 확장될 것이라 착각했습니다. 코딩은 논리적인 닫힌 세계지만, 현실 세계의 업무는 불확실성과 변수로 가득 찬 열린 세계였습니다.
우리는 LLM이라는 '서투른 도구' 위에 에이전트라는 또 다른 '서투른 도구'를 쌓아 올리고 있었던 겁니다. 개리 마커스(Gary Marcus)의 이 지적을 프로젝트가 엎어지고 나서야 뼈저리게 이해했습니다. 안드레 카파시(Andrej Karpathy)가 최근 팟캐스트에서 "2025년은 에이전트의 해가 아니라, 에이전트의 10년(Decade of the Agent)의 시작일 뿐"이라고 정정한 것을 들었을 때, 저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10년이 걸릴 일을 6개월 안에 해내라며 개발자들을 닦달했던 셈입니다.
팀원들의 번아웃, 낭비된 반년의 기회비용, 그리고 경영진 앞에서 실패를 자인해야 했던 그날의 식은땀은 저에게 값비싼 교훈을 남겼습니다.
2026년이 된 지금, 살 칸(Sal Kahn)이 "AI가 노동자의 80%를 대체할 것"이라고 말해도 저는 더 이상 동요하지 않습니다. 예전 같았으면 "당장 우리도 대비해야 합니다!"라고 외쳤겠지만, 지금의 저는 차갑게 되묻습니다. "그 데이터를 누가 검증했습니까? 현재 가동 가능한 프로덕션 레벨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막연한 예측이나 '느낌(Vibes)'에 기반해 프로덕트 로드맵을 짜지 마십시오. 실리콘밸리의 구루들이 떠드는 미래가 아니라, 지금 당장 내 눈앞에서 작동하는 기술의 한계와 효용에 집중하십시오. "AI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상상보다는 "지금 AI가 무엇을 못 하는가"를 정확히 아는 것이, 디자이너와 PM이 갖춰야 할 진짜 비즈니스 리터러시입니다.
우리의 역할은 미래를 점치는 무당이 아니라, 현재의 기술로 사용자에게 확실한 가치를 전달하는 설계자임을 잊지 마십시오. 저는 그 당연한 사실을 깨닫기 위해 너무 먼 길을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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