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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텔레콤 엔지니어의 내부 증언: 국가가 인터넷을 끊는 '진짜' 방법과 그 뒤의 로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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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대기업으로 이직하고 나서 가장 많이 보는 화면은 Datadog이나 AWS CloudWatch 대시보드입니다. 트래픽이 튀거나 레이턴시(Latency)가 조금만 늘어져도 슬랙 알람이 울리고, 팀 전체가 긴장하죠. 스타트업 시절, 맨땅에 헤딩하며 서버가 죽네 사네 밤새우던 때와는 확실히 다른 종류의 압박감입니다. 그런데 최근 우연히 읽게 된 한 기사가 저의 '장애 대응'에 대한 관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편안한 사무실에서 '가용성 99.99%'를 논할 때, 누군가는 '생존'을 위해 인터넷 연결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바로 시리아 내전 한복판에 있었던 텔레콤 엔지니어, '마흐무드(가명)'의 이야기입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개발자로서 기술이 정치나 전쟁과는 무관한 중립적인 도구라고 믿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를 접하고 등골이 서늘해졌습니다. 마흐무드는 2013년 여름, 알레포에서 이드리브로 가는 버스 안에서 ISIS 검문소를 마주쳤습니다. 당시 그의 가방에는 업무용 노트북이 있었고, 그 안에는 중국 화웨이(Huawei) 장비 연수 때 찍은 서버 클러스터 사진들이 들어있었죠.
ISIS 대원에게 이 사진들은 '스파이 행위'로 보였을 겁니다. 네트워크 엔지니어가 라우팅 테이블을 관리하고 서버실을 점검하는 지극히 일상적인 업무가, 그곳에서는 목숨을 위협하는 트리거가 된 것입니다. 눈이 가려지고 수갑이 채워지는 순간, 마흐무드가 느꼈을 공포는 상상조차 되지 않습니다.

이 이야기가 저에게 충격으로 다가온 진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바로 '인터넷 셧다운(Shutdown)'의 실체 때문입니다.
우리는 보통 서버 장애라고 하면 코드 버그나 트래픽 폭주, 혹은 물리적인 케이블 절단을 떠올립니다. 하지만 시리아에서 발생한 2011년, 2012년의 대규모 인터넷 차단은 달랐습니다. 기사에 등장하는 네트워크 분석가 더그 마도리(Doug Madory)는 BGP(Border Gateway Protocol) 데이터를 분석하며 이상 징후를 발견했습니다. 물리적인 케이블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 의도적으로 라우팅 경로를 철회(Withdrawal)했다는 데이터가 찍힌 것이죠.
즉, 국가가 버튼 하나로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려버린 겁니다. 기술적으로는 라우터 설정 변경에 불과한 명령어 몇 줄이, 현실 세계에서는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키고 고립된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는 무기가 되었습니다. 마흐무드는 목숨을 걸고 이 내부 사정을 외부 분석가들에게 알렸습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로그(Log)'가 그에게는 목숨을 건 '증언'이었던 셈입니다.
이 글을 읽으며 8년 차 개발자로서 묘한 부채감을 느꼈습니다. 저는 지금껏 Cursor나 Copilot 같은 AI 도구를 쓰면서 "어떻게 하면 코드를 더 빨리 짤까", "어떻게 하면 배포 시간을 줄일까" 같은 효율성에만 매몰되어 있었던 건 아닐까 하고요.
기술은 그 자체로 가치 중립적이지 않습니다. 우리가 작성하는 코드 한 줄, 우리가 관리하는 인프라 설정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정보를 얻는 통로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통제의 수단이 될 수도 있습니다. 엔지니어링은 단순히 기계를 다루는 일이 아니라, 결국 사람과 사람을 잇는 일이라는 본질을 뼈저리게 다시 느꼈습니다.
주니어 개발자분들, 그리고 저와 비슷한 연차의 동료분들께 감히 한 말씀 드리고 싶어요. 우리가 모니터링하는 트래픽 그래프 너머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단순히 404 에러를 200 OK로 바꾸는 기술자가 아니라, 이 연결이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고민하는 엔지니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저는 터미널을 엽니다. 하지만 마흐무드의 이야기를 접한 뒤, 제 손끝에서 나가는 커밋(Commit) 하나하나가 조금은 더 무겁게 느껴지네요. 부디 우리의 기술이 단절이 아닌 연결을 위해 쓰이기를 바라며, 오늘도 안전한 배포 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