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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성으로 아키텍처를 무시하다 배포 3시간 전 서버를 터뜨리고, 겸손을 배운 이야기

무지성으로 아키텍처를 무시하다 배포 3시간 전 서버를 터뜨리고, 겸손을 배운 이야기

김현수·2026년 1월 6일·3

아키텍처를 무시했다가 서버를 터뜨린 경험과 Box64 v0.4.0 릴리스를 통해 본 코드 부채 및 리팩터링의 중요성에 대한 고찰입니다.

코드는 자산이 아닙니다. 부채입니다.

특히나 남이 짠 코드를 에뮬레이션 계층 위에서 돌려야 할 때, 그 부채는 이자가 복리로 불어납니다. 주니어 시절, AWS Graviton 인스턴스가 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x86 바이너리를 무작정 ARM 서버에 밀어 넣었다가 주말을 통째로 날린 적이 있습니다. 호환성 레이어가 모든 걸 해결해 줄 거라는 안일한 믿음은, 세그멘테이션 폴트(Segmentation Fault)라는 차가운 현실 앞에서 산산조각 났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하드웨어 추상화는 마법이 아니라, 누군가가 밤새워 막아낸 '방어적 코딩'의 결과물이라는 것을요.

최근 Box64 v0.4.0 릴리스 노트를 보며 그때의 식은땀이 다시 흘렀습니다. 하지만 이번 업데이트는 단순한 기능 추가가 아니라, 개발자로서 곱씹어볼 만한 '부채 탕감'의 기록이더군요.

보통의 에뮬레이터 업데이트는 "이제 이 게임도 돌아갑니다"라고 자랑하기 바쁩니다. 하지만 시니어의 눈에 먼저 들어온 건 '리팩터링''메모리 관리'였습니다.

이번 버전의 핵심은 접두사(Prefix) Opcode 디코더의 구현입니다.

x86 명령어 셋은 끔찍하게 복잡합니다. 덕지덕지 붙은 접두사들을 처리하려다 보면 코드는 스파게티가 되고, 예외 처리는 누더기가 되기 십상입니다. Box64 팀은 이걸 뜯어고쳤습니다. 특이한 Opcode를 처리하기 위해 중복 코드를 남발하는 대신, 구조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택했습니다.

그 결과 불필요한 소스 파일들이 대거 삭제되었습니다. 코드를 더하는 게 아니라 빼는 것. 이것이야말로 유지보수성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입니다. 덕분에 Dynarec(동적 재컴파일러)은 추가 코딩 없이도 희귀한 Opcode들을 자동으로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또 하나 흥미로운 점은 메모리 가비지 컬렉션에 대한 고민입니다.

Steam이나 libcef 기반의 무거운 앱들은 에뮬레이터 위에서 메모리를 물 쓰듯 씁니다. 네이티브로 변환된 코드 블록이 더 이상 필요 없을 때, 이를 제때 해제하지 않으면 메모리 누수(Leak)는 필연적입니다. 이번 버전부터 사용되지 않는 블록을 식별해 삭제하는 메커니즘이 도입되었습니다. 아직 진행 중인 작업이라지만, 리소스 효율을 고민하지 않는 에뮬레이터는 장난감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정확히 짚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실 다지기는 LoongArch 아키텍처에서 빛을 발했습니다.

중국산 CPU라고 무시할 게 아닙니다. 3A6000 프로세서(4코어)와 RX7600 조합에서 꽤 놀라운 퍼포먼스를 보여줍니다. 단순한 에뮬레이션을 넘어 Wine과 Proton까지 구동하며 Steam 게임을 돌립니다. 물론 커널 페이지 크기를 4K로 맞춰야 하는 제약은 있지만, 하드웨어 스펙을 소프트웨어 최적화로 어디까지 끌어올릴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특히 동기화(Synchronization) 이슈를 다루는 방식은 인상적입니다.

멀티 스레드 환경에서 Wine의 기본 동기화는 느립니다. ESync나 FSync 같은 대안이 있지만, 100% 정확성을 보장하지 않아 Rockstar Launcher 같은 앱은 뻗어버리곤 합니다. Box64는 이를 지원하면서도, 커널 레벨의 동기화 기술인 NTSync까지 바라보고 있습니다. 아직 실험적이지만, 3C6000 프로세서에서 FPS가 80%나 향상되었다는 보고는 무시할 수 없는 수치입니다.

개발자는 늘 '최신 기술'이라는 환각제에 취하기 쉽습니다.

RISC-V니 LoongArch니 하는 새로운 아키텍처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열광합니다. 하지만 그 바닥에는 수많은 명령어 셋의 불일치와 메모리 관리의 고통이 깔려 있습니다. Box64 v0.4.0은 그 진흙탕 싸움을 피하지 않고, 코드를 삭제하고 구조를 개선하며 정면으로 돌파했습니다.

여러분이 작성하는 코드는 어떻습니까?

기능을 추가하기 위해 덕지덕지 if 문을 바르고 있지는 않나요? 레거시 코드가 무서워서 복사-붙여넣기로 중복을 만들고 있지는 않나요?

Box64의 이번 릴리스는 우리에게 묵직한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의 코드는 부채를 줄이고 있는가, 늘리고 있는가?"

화려한 기능 명세서 뒤에 숨겨진, 지루하고 고통스러운 리팩터링 과정을 존경합니다. 저 또한 오늘 밤은 새로운 라이브러리를 도입하는 대신, 냄새나는 레거시 코드 한 줄을 지우는 것으로 퇴근해야겠습니다.

김현수
김현수10년 차 시니어 개발자

SI의 척박한 땅에서 시작해 빅테크의 대규모 트래픽까지 경험한 생존형 개발자입니다. '화려한 기술'보다 '퇴근을 보장하는 안정성'을 신봉하며, 주니어들의 삽질을 방지하기 위해 펜을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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