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솔직히 말해봅시다. 여러분이 오늘 작성한 코드 중, 정말 '필수불가결한' 부분은 얼마나 됩니까? React나 Next.js가 만들어내는 수 메가바이트짜리 자바스크립트 번들, 사용자는 알지도 못하는 수십 개의 서드파티 트래킹 스크립트, 그리고 그것을 지탱하기 위해 밤새 돌아가는 쿠버네티스 클러스터. 우리는 지금 기술의 풍요 속에 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비만의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제가 넷플릭스에서 Staff SRE로 일하며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트래픽 폭주가 아닙니다. 바로 '복잡도'입니다. 시스템이 복잡해질수록 장애의 원인을 찾는 시간(MTTR)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그 시간 동안 제 동료들의 삶은 실시간으로 갈려 나갑니다. 그런데 최근 제가 본 하나의 리포트는 이 복잡한 웹 생태계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을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바로 'Gemini Protocol'의 배포 통계입니다.
Gemini는 HTTP보다 가볍고 Gopher보다는 현대적인 인터넷 프로토콜입니다. 최근 업데이트된 통계를 보면, 현재 Gemini 공간(Space)에는 약 64만 6천 개의 URI가 존재합니다. 실리콘밸리의 거대 플랫폼들에 비하면 초라한 숫자라고 비웃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진짜 주목해야 할 수치는 '크기'입니다. 이 프로토콜 내 자원(Resource)의 평균 크기는 고작 46KB입니다. 여러분이 만드는 웹사이트의 파비콘 이미지 하나보다 작을 수도 있는 용량입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콘텐츠의 본질입니다. 전체 트래픽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MIME 타입은 text/gemini입니다. 화려한 CSS도, 무거운 클라이언트 사이드 스크립트도 없습니다. 오직 텍스트와 정보만이 흐릅니다. 56만 개 이상의 요청 중 95%가 상태 코드 '20(Success)'을 반환했습니다. 404 에러나 500 에러로 점철된 현대의 웹과는 사뭇 다른 안정감입니다.
저는 과거 AWS EC2 Core 팀에 있을 때, 기능 하나를 추가하기 위해 수십 개의 의존성 패키지를 검토해야 했습니다. "이게 정말 필요한가?"라는 질문보다는 "남들도 쓰니까"라는 이유로 덕지덕지 붙은 라이브러리들이 결국 새벽 3시의 장애를 불렀습니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개발자의 실력은 무언가를 더하는 능력이 아니라, 불필요한 것을 덜어내는 능력에서 나온다는 것을요. Gemini의 통계가 보여주는 '중앙값 2KB'의 세계는 기술적 퇴보가 아니라, 잃어버린 '본질'에 대한 향수이자 경고입니다.
안타까운 점은 이 통계에서 한국어(ko)로 된 URL은 단 56개에 불과했다는 사실입니다. 전체 언어 통계에서 하위권에 머물러 있죠. 우리는 언제나 "더 빠르고, 더 화려하고, 더 많은 기능"을 요구하는 시장의 압박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일 겁니다. 하지만 엔지니어로서 우리는 질문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서비스가 정말 사용자에게 가치를 전달하고 있는지, 아니면 그저 브라우저의 리소스를 낭비하고 있는지 말입니다.
당장 회사에서 Gemini 프로토콜을 도입하라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이 '디지털 금욕주의'가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텍스트 위주의 담백한 정보 전달, 1초 미만의 로딩 속도, 그리고 예측 가능한 시스템 동작. 이것들은 2024년의 웹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아니 오히려 더 절실한 가치들입니다.
여러분의 다음 스프린트에서는 기능을 추가하는 티켓 대신, 불필요한 코드를 삭제하고 구조를 단순화하는 티켓을 하나 생성해 보십시오. 시스템의 가용성(Availability)을 높이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고장 날 부품 자체를 없애는 것입니다. 화려한 기술 스택 뒤에 숨어 본질을 외면하지 마십시오. 결국 5년 뒤 살아남는 것은 덕지덕지 기워 입은 누더기 같은 시스템을 관리하는 사람이 아니라, 핵심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과감히 버릴 줄 아는 엔지니어일 테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