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김현수입니다.
오늘은 기술 이야기 말고, 조금 더 말랑말랑한 이야기를 해볼까 해요.
얼마 전 제 생일이었습니다.
문득 20대 시절, 그러니까 제가 막 개발자로 커리어를 시작하던 때의 사진이 보고 싶더군요.
"그때 참 풋풋했지" 하며 하드디스크를 뒤적였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정말 기가 막히게도, 딱 2005년부터 2010년 사이의 사진만 통째로 비어있었습니다.
대학 졸업식 사진 몇 장, 그리고 화질 깨진 셀카 서너 장이 전부였죠.
처음엔 제가 관리를 못 해서 그런 줄 알았습니다.
"아, 그때 포맷을 잘못했나?" 하고 자책했죠.
그런데 최근 BBC에서 재미있는 기사를 하나 읽고 무릎을 쳤습니다.
이게 저만의 실수가 아니라, 전 지구적인 현상이라는 겁니다.

이 시기를 전문가들은 '디지털 블랙홀'이라고 부릅니다.
왜 하필 2000년대 중반일까요?
생각해 보면 그때가 기술의 과도기였거든요.
필름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일명 '디카')로 넘어가는 그 격변의 시기 말입니다.
당시 우리는 미친 듯이 사진을 찍어댔습니다.
필름값이 안 드니까요.
메모리 카드가 꽉 찰 때까지 셔터를 눌렀죠.
그런데 문제는 '저장'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아이폰으로 사진을 찍으면, 내가 잠든 사이에 iCloud나 Google Photos가 알아서 서버로 전송해 줍니다.
하지만 그땐 클라우드(Cloud)라는 개념이 대중적이지 않았어요.
기껏해야 싸이월드 같은 곳에 저화질로 올리거나, 외장 하드에 복사해 두는 게 전부였죠.
개발자 용어로 말하자면, 데이터 생산 속도는 폭발했는데 스토리지 인프라가 그걸 못 따라간 겁니다.
게다가 당시 하드웨어의 신뢰성은 지금과 비교도 안 되게 낮았습니다.
기억나시나요?
툭하면 인식 안 되는 SD 카드.
책상에서 한 번 떨어뜨리면 '딸깍' 소리와 함께 사망하는 외장 하드.
서로 호환 안 되는 수십 종류의 USB 케이블들.
우리는 가장 불안정한 매체에 가장 소중한 기억을 맡기고 있었던 셈입니다.
기사에서는 이렇게 표현하더군요.
"풍요로워 보였지만, 사실은 가장 취약했던 시기."
우리는 우리가 찍은 사진이 영원할 거라 믿었습니다.
마치 레거시 코드를 짜면서 "이건 나중에 리팩토링하면 돼"라고 미루는 것처럼요.
하지만 '나중'은 오지 않았습니다.
노트북은 고장 났고, 백업 하드는 분실됐고, 웹사이트들은 서비스를 종료했죠.
결국 한 세대의 기록이 증발해 버렸습니다.

저도 곰곰이 복기해 봤습니다.
2009년쯤 쓰던 노트북 하드디스크가 나갔던 기억이 나더군요.
그 안에 제 20대 중반의 모든 추억이 들어있었는데 말이죠.
당시엔 복구 비용이 너무 비싸서 포기했었습니다.
그게 영영 이별이 될 줄은 몰랐네요.
이 현상은 우리에게 뼈아픈 교훈을 줍니다.
"디지털 데이터는 영구적이지 않다."
우리는 코드를 짤 때 데이터베이스의 이중화(Redundancy)나 재해 복구(DR) 시스템을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하면서,
정작 내 인생의 데이터에 대해서는 너무 안일했습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지금 찍고 있는 사진들도 안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클라우드 계정이 해킹당하거나, 서비스 약관이 바뀌어 데이터가 날아갈 수도 있으니까요.
현업에서 백업의 골든 룰로 통하는 '3-2-1 법칙'을 추천합니다.
3: 데이터는 최소 3개의 복사본을 유지한다.
2: 2개의 서로 다른 매체에 저장한다. (예: 외장 하드 + 클라우드)
1: 1개는 반드시 오프라인(물리적으로 떨어진 곳)에 보관한다.
너무 거창하게 들리나요?
그렇다면 적어도 1년에 한 번은 클라우드에 있는 사진을 외장 하드로 '덤프' 뜨는 습관이라도 들여보세요.
기술은 계속 발전하지만, 역설적으로 우리의 기억은 더 쉽게 휘발될 수 있습니다.
이번 주말에는 서랍 구석에 박혀있는 옛날 하드디스크나 USB를 한번 찾아보는 건 어떨까요?
운이 좋다면, 잊고 있었던 2000년대의 자신을 다시 만날 수도 있으니까요.
물론, 그 사진 속 패션은 좀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요.
오늘도 버그 없는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김현수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