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는 서버의 가용성(Availability) 99.999%를 유지하기 위해 밤을 새웁니다. 로드 밸런서 뒤에 숨은 인스턴스 하나가 튀기만 해도 새벽 3시에 PagerDuty 알람을 받고 벌떡 일어납니다. 그런데 정작 그 시스템을 운영하는 엔지니어 본인의 가용성은 어떻습니까? 저는 실리콘밸리에서 15년을 구르며 번아웃으로 증발해버린 천재들을 수도 없이 목격했습니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는 단순한 번아웃 극복기가 아닙니다. 코넬대 컴퓨터공학 박사 출신 엔지니어가 자신의 뇌가 셧다운 되는 최악의 상황(정신분열적 에피소드)을 겪고, 이를 의학이 아닌 분산 시스템 엔지니어링 기법으로 해결해 낸 지독한 생존 기록입니다.
장애 상황: 뇌가 거짓말을 하기 시작했다
Hacker News에 올라온 로버트 에스크리바(Robert Escriva)의 글은 충격적이었습니다. 그는 분산 시스템과 복잡한 시스템 디버깅을 전공한 박사입니다. 3년 전, 그는 정신병적 에피소드를 겪으며 자신의 인지 능력이 붕괴하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치유"를 위해 휴양지로 떠났겠지만, 이 뼛속까지 엔지니어인 사람은 자신의 뇌를 비잔틴 장애(Byzantine Fault) 가 발생한 분산 시스템으로 정의했습니다.
비잔틴 장애란 시스템의 일부 노드가 고장 나는 것을 넘어, 악의적으로 거짓 정보를 전달하여 전체 네트워크의 합의를 방해하는 상황을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뇌가 보내는 감각과 신호가 해킹당한 노드처럼 거짓 데이터를 보내고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서 배운 기술로 자신의 마음에 대한 RCA(근본 원인 분석)를 시작했습니다.
해결 솔루션: 감정을 디버깅하는 알고리즘
그가 공개한 문서는 회고록이 아니라 기술 매뉴얼에 가깝습니다. 핵심은 "목적지(완치)가 아니라 과정(Process)"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1. 신뢰할 수 없는 노드 격리
그는 자신의 뇌가 보내는 신호(망상, 환청)를 100%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마치 신뢰할 수 없는 클라이언트의 요청을 검증하듯, 자신의 사고를 검증하는 로직을 만들었습니다. 시스템이 오동작할 때 로그를 분석하듯, 자신의 상태를 객관적인 데이터로 모니터링했습니다.
2. 자동화된 방어 기제 구축
그는 이 과정을 기계적인 시스템에 적용하는 것과 동일하게 자동화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실제로 그는 LSM 트리(Log-Structured Merge-tree)를 위한 새로운 컴팩션 알고리즘을 개발하면서, 이 복잡한 엔지니어링 몰입 과정을 오히려 정신적 안정을 찾는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코드를 짜고 시스템을 구조화하는 행위 자체가 무너진 뇌의 질서를 다시 잡는 리부팅 과정이었던 셈입니다.
3. 커뮤니티라는 이름의 리던던시(Redundancy)
댓글 타래에서 흥미로운 점은 비슷한 고통을 겪는 엔지니어들의 증언이었습니다. 트라우마로 인한 환청을 겪는 다른 엔지니어는 "컴퓨팅과 인터넷이 나의 지원 네트워크이자 탈출구"라고 말합니다. 이는 단일 장애 지점(SPOF)을 없애기 위해 여러 가용 영역(Multi-AZ)에 서버를 분산시키는 전략과 같습니다. 혼자서 감당하려 하지 않고, 외부 시스템(커뮤니티, 동료, 엔지니어링 작업)에 부하를 분산시킨 것입니다.
결과: 99%의 가동률을 위한 타협
로버트는 자신이 완벽하게 치유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단지 "안개를 뚫고 반대편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설계했을 뿐입니다. 이는 우리가 운영하는 대규모 분산 시스템과 같습니다. 버그가 없는 완벽한 소프트웨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다만 장애가 발생했을 때 전체 시스템이 셧다운 되지 않도록 격리하고(Circuit Breaker), 우회하고(Failover), 복구하는 메커니즘이 존재할 뿐입니다.
Staff SRE의 제언
많은 개발자가 자신의 뇌를 오버클럭하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몸은 교체 불가능한 레거시 하드웨어입니다. 쿠버네티스 팟(Pod)처럼 죽으면 다시 띄울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우울감, 번아웃, 혹은 설명할 수 없는 불안이 찾아온다면, 이를 막연한 '감정'으로 치부하지 마십시오. 시스템에 경고등(Alert)이 뜬 것입니다. 로버트처럼 엔지니어링 관점으로 접근하십시오.
로그를 남기십시오.
어떤 입력값(스트레스, 수면 부족)이 들어왔을 때 커널 패닉(공황)이 발생하는지 파악하십시오.
그리고 혼자 해결하려 하지 말고 트래픽을 분산하십시오.
시스템의 안정성은 '무장애'가 아니라 '빠른 복구 능력(Resilience)'에서 옵니다. 당신의 인생 가용성을 0%로 만들지 마십시오. 오늘 밤은 모니터 끄고 푹 주무시길 바랍니다. 그게 최고의 배포 전략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