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얼마 전, 흥미로운 글을 하나 읽었습니다. 요리에 관한 글이었는데, 내용이 우리 프로덕트 디자이너들이 겪는 고민과 너무나 맞닿아 있어 한참을 곱씹었습니다. 글의 요지는 간단했습니다. "진정한 미식은 제약(Constraints)에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나무에서 갓 따 따뜻한 온기가 남아있는 체리를 먹어본 적이 있나요? 그 체리는 완벽한 당도와 산미를 갖추고 있어 별다른 조리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운송 과정이 길어지고 시간이 지나면, 요리사는 떨어진 맛을 보상하기 위해 설탕을 넣고, 산을 더하고, 온갖 기교를 부립니다. 즉, 재료의 본질이 약해질수록 요리는 점점 더 시끄러워지고 복잡해진다는 것이죠.
저는 이 대목에서 우리가 만드는 디지털 프로덕트를 떠올렸습니다. 주니어 시절, 저는 화면을 '채우는' 데 급급했습니다. 기획서의 빈약한 논리를 감추기 위해 화려한 인터랙션을 넣었고, 사용자 가치가 불분명한 기능을 돋보이게 하려 비주얼 트렌드를 맹목적으로 좇았습니다. 마치 맛이 빠진 체리에 설탕을 들이붓듯 말이죠. 현대의 주방이 모든 식재료를 언제든 구할 수 있는 풍요로움 때문에 오히려 재료에 대한 감각을 잃어가듯, 우리도 피그마(Figma)와 강력한 디자인 시스템, 무한한 레퍼런스 덕분에 너무 쉽게 화면을 찍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합니다. 도구가 강력해질수록 우리는 '왜(Why)'를 잊고 '어떻게(How)'에만 집착하기 쉽습니다.
많은 디자이너와 기획자들이 개발팀의 리소스 부족이나 레거시 시스템(Legacy System)의 한계를 불평하곤 합니다. "기술적 제약 때문에 원하는 디자인을 구현할 수 없다"며 좌절하죠. 하지만 앞서 언급한 글에서는 전통 요리가 바로 그 제약 덕분에 탄생했다고 말합니다. 오븐이 없고 불 조절이 어려웠기에 푹 끓이는 스튜가 발달했고, 보존 기술이 부족했기에 발효 음식이 탄생했습니다. 이는 우연이 아니라 환경에 대한 치열한 '적응'의 결과입니다. 프로덕트 디자인도 마찬가지입니다. 훌륭한 UX는 무한한 리소스 위에서 탄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트래픽이 몰리는 서버 환경, 느린 네트워크 속도, 복잡한 비즈니스 로직이라는 제약 속에서 사용자의 문제를 가장 효율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찾을 때, 비로소 '필연적인' 디자인이 나옵니다.
우리는 종종 '레시피'에 집착하는 실수를 범합니다. 타사의 성공적인 UI 패턴이나 널리 알려진 방법론을 그대로 가져와 우리 제품에 적용하려 합니다. 글쓴이는 이를 두고 "현대 레시피는 요리를 훈련장이 아닌 목적지로 취급한다"고 비판합니다. 정해진 순서대로 따라 하면 결과물은 나오겠지만, 그 과정에서 재료의 물성을 이해하거나 불의 세기를 조절하는 직관은 기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할 때도 컴포넌트의 생김새(Look)만 규정하고 그것이 작동하는 원리(Behavior)를 정의하지 않으면, 상황이 조금만 바뀌어도 시스템은 무용지물이 됩니다. 진정한 시니어는 레시피를 외우는 사람이 아니라, 재료(데이터, 사용자 니즈, 기술 스택)가 현재 환경에서 어떻게 반응하는지 이해하고 그 자리에서 최적의 개입(Intervention)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일해야 할까요? '앵커 레시피(Anchor Recipes)'를 가져야 합니다. 요리에서 로스트 치킨이 남은 뼈로 스톡을 만들고 살코기로 샌드위치를 만드는 기초가 되듯, 우리에게도 변하지 않는 원칙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화려한 비주얼 스타일이 아니라, 사용자의 인지 부하를 줄이는 정보 구조 설계, 데이터 흐름에 맞는 논리적인 인터페이스 배치, 그리고 개발 효율성을 고려한 시스템적 사고입니다. "어떤 화면을 그릴까?"가 아니라 "지금 우리가 가진 리소스는 무엇이며, 이것이 사용자의 맥락에서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실수를 실패로 규정하고 처음부터 다시 그리는 것이 아니라, 소금 간을 맞추듯 조금씩 튜닝하며 프로덕트의 핏(Fit)을 맞춰가는 과정, 그것이 바로 애자일(Agile)의 본질이자 디자인의 성숙 과정일 것입니다.
결국 좋은 디자인은 '발명'되는 것이 아니라 제약 속에서 다듬어지며 '발견'되는 것입니다. 겨울에 여름 채소를 내놓으려 애쓰는 것은 낭비입니다. 마찬가지로, 현재의 비즈니스 단계와 기술적 환경을 무시한 채 이상적인 시안만 고집하는 것은 디자이너의 직무 유기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다루는 재료(기술, 데이터)에 대한 깊은 이해와 제약을 존중하는 태도, 그리고 그 안에서 최선을 찾아내는 실용주의. 이것이 쌓일 때, 우리의 프로덕트는 화요일 밤의 저녁 식사처럼 차분하지만 깊은 만족감을 주는 결과물이 될 것입니다. 새로움보다는 '옳음'을 추구하는 디자이너가 되시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