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북캐롤라이나 서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헬렌(Helene) 소식을 접하며, 12년 차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단순히 자연재해의 위력 때문이 아닙니다. 재난 상황에서 IT 기술, 특히 우리가 매일 공들여 만드는 '웹사이트'가 얼마나 무력하고 때로는 폭력적일 수 있는지 뼈저리게 느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한 웹 개발자가 폭풍 속에서 겪은 생존기와 그가 던진 묵직한 화두에 대한 제 회고이자, 동료 디자이너와 개발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허리케인이 휩쓸고 간 뒤, 전력과 통신망은 처참히 무너졌습니다. 사람들은 생존에 직결된 정보, 즉 도로 통제 상황이나 대피소 위치를 알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마주한 것은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무한히 돌아가는 로딩 스피너와 '연결 시간 초과(Time out)' 메시지뿐이었습니다. 겨우 접속된 정부 사이트는 무거운 인터랙티브 지도를 불러오려다 API 호출 실패로 먹통이 되었고, 어떤 긴급 사이트는 고해상도 이미지 슬라이더를 로드하느라 귀중한 데이터와 배터리를 낭비하고 있었습니다. 생사가 오가는 긴박한 순간에, 우리가 '사용자 경험(UX)'을 위한다며 추가한 화려한 인터랙티브 요소들이 오히려 정보 접근을 차단하는 거대한 장벽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부분은, 그 아비규환 속에서 가장 유용했던 정보 소스가 무엇이었느냐는 점입니다. 그것은 화려한 대시보드도, 실시간 지도 서비스도 아니었습니다. 지역 의원이 보낸 '텍스트로만 이루어진 뉴스레터'였습니다. 음식, 식수, 연료, 도로 상황이 단순한 글머리 기호(Bullet points)로 나열된 그 투박한 이메일이, 수백억 원을 들여 구축한 관공서 웹사이트보다 훨씬 더 강력한 생존 도구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디자인을 시각적인 아름다움이나 인터랙션의 풍부함으로 착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극한의 상황에서 증명된 사실은 명확합니다. 디자인의 본질은 결국 '정보의 전달'이며, 그 정보의 가장 단단한 그릇은 Plain Text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런 극한 상황은 자주 오지 않습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요? 엘리베이터 안에서, 터널을 지날 때, 혹은 지방 출장을 갔을 때 3G로 떨어지는 안테나를 보며 답답해했던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가 쾌적한 오피스에서 5G와 기가 인터넷 환경을 기준으로 제품을 만들 때, 실제 사용자 환경은 훨씬 열악할 수 있습니다. 10MB가 넘는 PDF 메뉴판을 다운로드해야만 가격을 알 수 있는 레스토랑 웹사이트나, 간단한 공지사항 하나를 보기 위해 수십 개의 네트워크 요청(Network Request)과 무거운 JavaScript 번들(Bundle)을 내려받아야 하는 서비스들은 일상에서도 사용자를 지치게 만듭니다. '트렌디한 기술 스택'이라는 명목하에 우리는 너무 많은 군더더기를 웹에 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반성해야 합니다.
이제는 기본(Back to Basics)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단순히 레거시(Legacy) 기술을 쓰자는 말이 아닙니다. Semantic HTML을 준수하여 구조를 탄탄히 하고, 불필요한 스크립트를 걷어내며, 이미지 최적화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Google Lighthouse 점수가 단순히 개발자의 숙제가 아니라, 비즈니스의 존폐와 사용자의 안전을 가르는 지표임을 인지해야 합니다. 우리가 만드는 프로덕트가 화려한 치장을 모두 걷어내고도 여전히 가치 있는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지 자문해 보십시오.
저 역시 시니어 디자이너로서 후배들에게 종종 "보기에 심심해 보인다"는 피드백을 주곤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사례를 통해 다시 한번 깨닫습니다. 사용자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화면을 채우는 현란한 모션이 아니라, 그들이 필요로 하는 '답'을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얻는 것입니다. 접근성(Accessibility)과 성능(Performance)은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그것은 디자이너와 개발자가 갖춰야 할 직업 윤리이자, 우리 제품이 어떤 상황에서도 사용자를 배신하지 않겠다는 약속입니다. 오늘 여러분이 작성하고 있는 그 코드와 디자인이, 누군가에게는 절박한 순간의 유일한 동아줄이 될 수도 있음을 기억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