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필라델피아에 있는 메이시스(Macy's) 백화점, 옛 워너메이커(Wanamaker) 건물을 방문했을 때의 일입니다. 단순히 쇼핑을 하러 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세계에서 가장 크고, 여전히 작동하는 거대한 시스템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워너메이커 오르간(Wanamaker Organ)'입니다. 7층 높이의 그랜드 코트를 가득 채우는 이 압도적인 기계를 보며, 저는 문득 12년 차 프로덕트 디자이너로서 매일 마주하는 고민들을 떠올렸습니다. 우리는 매번 "확장성(Scalability)"을 외치고 "유지보수(Maintenance)"를 강조하지만, 과연 이 100년 된 오르간만큼 그 본질을 꿰뚫고 있을까요? 솔직히 말해, 그 거대한 파이프 앞에서 저는 우리가 만드는 디지털 프로덕트의 수명이 얼마나 덧없는지를 생각하며 잠시 숙연해졌습니다.
처음 이 오르간의 역사를 들여다보았을 때 가장 놀라웠던 점은, 이 거대한 악기가 처음부터 완벽한 형태로 그 자리에 있었던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904년 세인트루이스 세계 박람회를 위해 처음 제작되었을 때도 이미 '세계 최대'라는 타이틀을 달고 있었지만, 필라델피아의 백화점 그랜드 코트로 옮겨왔을 때는 공간을 채우기에 소리가 '불충분'하다고 판단되었습니다. 개발자로 치면 초기 아키텍처 설계가 변경된 비즈니스 요구사항(백화점이라는 거대 공간)을 감당하지 못한 셈입니다. 보통의 경우라면 "이 정도로 만족합시다"라고 타협하거나, 무리하게 볼륨만 높이는 핫픽스(Hotfix)를 적용했을 겁니다. 하지만 워너메이커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백화점 꼭대기 층에 아예 '오르간 공장'을 차렸습니다. 외부 벤더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인하우스(In-house) 조직을 만들어 지속적인 확장과 개선을 꾀한 것입니다.

우리가 프로덕트를 만들 때 흔히 범하는 실수가 있습니다. 런칭(Launch)을 '끝'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워너메이커 오르간은 런칭 이후 무려 8,000개의 파이프를 추가하며 끊임없이 스케일업(Scale-up)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부품을 더하는 차원이 아닙니다. 기존의 소리와 새로운 소리가 충돌하지 않도록 조율하고, 6개의 매뉴얼(건반)이 유기적으로 작동하도록 인터페이스를 설계하는 고도의 오케스트레이션(Orchestration) 과정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마이크로서비스 아키텍처(MSA)를 도입하거나 디자인 시스템을 구축할 때 겪는 고통과 놀랍도록 닮아 있습니다. 단순히 기능을 덕지덕지 붙이는 것은 확장이 아니라 '복잡도'를 높이는 일일 뿐임을, 이 오르간은 100년 전부터 웅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것은 '유지보수'에 대한 그들의 태도입니다. 이 오르간은 단순한 악기가 아니라 '예술 오르간(Art Organ)'이라는 철학 아래, 최고의 장인 정신과 재료로 만들어졌습니다. 더 놀라운 건, 이를 관리하기 위해 두 명의 전문 큐레이터(Curator)를 정규직으로 고용해 왔다는 점입니다. 기업의 주인이 워너메이커 가문에서 여러 회사를 거쳐 현재의 메이시스로 바뀌는 격동의 세월 속에서도, 이 관리 조직만큼은 살아남았습니다. 우리가 레거시(Legacy) 코드를 대하는 태도를 되돌아보게 합니다. "나중에 리팩토링하자"며 기술 부채를 쌓아두고, 정작 운영 인력은 줄이려 드는 IT 업계의 관행과는 정반대입니다. 28,762개의 파이프가 하나도 빠짐없이 제 소리를 내는 건 기적이 아니라, 매일매일 수행된 꼼꼼한 관리의 결과물입니다.

디자이너로서 오르간의 콘솔(Console)을 보며 UX(사용자 경험)에 대한 생각도 깊어졌습니다. 수백 개의 스톱(Stop)과 6단의 건반. 얼핏 보면 극도로 복잡하고 불친절한 인터페이스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전문가'를 위한 도구입니다. 모든 사용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기능을 숨기고 단순화하는 것이 능사가 아닙니다. 오르가니스트라는 '헤비 유저'가 원하는 소리를 즉각적으로 조합하고,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을 손끝으로 통제할 수 있도록 설계된 '전문가용 대시보드'인 셈이죠. 때로는 직관성보다 효율성과 통제력이 더 중요한 UX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고 지나칩니다.
결국 워너메이커 오르간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위대한 프로덕트는 한순간의 영감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관리와 합리적인 확장, 그리고 본질에 대한 집착으로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만들고 있는 서비스나 제품은 어떤가요? 런칭 후 1년만 지나도 삐걱거리는 레거시가 되고 있진 않나요? 아니면 워너메이커 오르간처럼 시간이 지날수록 더 풍성한 가치를 전달하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나요?
막막할 수 있습니다. 당장 눈앞의 스프린트 일정을 맞추기도 벅찬 것이 현실이니까요. 하지만 가끔은 모니터 화면에서 눈을 떼고, 100년 넘게 작동하는 이 거대한 기계를 상상해 보셨으면 합니다. "제대로 만든 시스템은 시간을 이긴다"는 사실이, 오늘 밤샘 작업을 하고 있을 여러분에게 작은 위로와 기준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